[파워CEO] 류장수 코닉시스템 회장

 지천명(知天命)을 2년 앞둔 2000년 창업했다. 단 한 번의 외도 없이 국책연구소 연구원으로만 살았던 그였기에 주변에서는 무모한 도전이라고 말렸다. 대기업도 천문학적인 투자가 뒤따라야 하는 위성 분야의 사업화에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던 시점에서의 ‘벤처 창업’은 더욱 그랬다.

 단지 위성통신 및 장비사업은 자금이 많이 들고 성공 가능성도 보장할 수 없다기에 아무도 하지 않으려고 해서 ‘나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시작했다.

 회사 설립 등기를 하던 날, 수십년간 피우던 담배를 끊었다. 진짜 열심히 하겠다는 스스로에 대한 약속이었다.

 하지만 잘 몰랐다. 사업이 이렇게 어려울 줄은….

 8년을 정신없이 살아왔다. 그리고 지난 15일 한 고개를 넘었다.

 그동안 일궈온 아태위성산업을 코스닥 상장기업인 코닉시스템과 합병했다. 창업 당시 꿈꿨던 ‘위성’을 산업으로 만들겠다던 꿈에 또 한발 다가서게 됐다.

 ◇아무도 안 해서 직접 시작했다=지난 1976년 국방과학연구소를 시작으로 한국산업경제정책연구원, 천문우주과학연구소, 한국항공우주연구소 등 국책연구소에서만 24년을 근무했다.

 천문우주과학연구소 우주공학연구실장으로 근무하던 1989년 12월 우주 부문이 이전되면서 한국항공우주연구소와 인연을 맺었다.

 다목적실용위성(아리랑) 1, 2호와 과학위성1호, 통신위성 국산화기반기술 연구사업 총괄연구책임자로 국내 위성사업을 주도했다.

 이 같은 대형 국책사업을 이끌면서 류 사장이 항상 부딪쳤던 장벽은 바로 ‘돈’이다.

 정부 관계자들에게 예산을 받기 위해 국가적인 차원의 대의명분은 너무도 쉽게 설명할 수 있었지만, 언제나 ‘경제성, 산업’이라는 질문이 던져지면 벽에 부딪치곤 했다.

 수천억원에 이르는 정부 예산을 항공우주연구소가 집행하면 돈을 가져가는 곳은 다 외국기업이었다. 그래서 대기업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위성 분야를 산업으로 만들어보자는 취지였다.

 끈질긴 설득 끝에 국내 최대 그룹 중 한 곳에서 최고 정책회의 안건으로까지 올리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당시 이리듐, 글로벌스타 등 저궤도 위성사업과 비교되며 최종 단계에서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결국 직접 사업에 나서기로 했다. 위성으로 산업을 만들어보겠다는 단순한 생각뿐이었다.

 ◇적자에도 수백억원을 투자하다=회사 이름을 지을 때도 무조건 ‘산업’이라는 말을 넣고 고민했다. 일단 시작을 했으니, 한국을 넘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최고가 되자는 생각으로 아태까지 붙였다. 그래서 아태위성산업이 됐다.

 류 사장이 생각했던 창업 자금은 최소 150억원이었지만, 이것저것 끌어모아서 30억원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투자 자금 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워낙 천문학적인 예산을 집행하다보니, 큰돈에 대한 감각만큼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05년까지 위성휴대폰 프로토콜(GMR)과 칩 개발에 425억원을 투자비가 소요됐다.

 법정관리에 있는 회사 인수조건으로 받은 100억원의 투자와 정지궤도 위성 이동통신사업자인 투라야사로부터 받은 연구용역비 120억원, 투자비 125억원, 인공위성 부품개발 국책과제 수행을 위한 정부예산 125억원 등 필요한 자금은 매듭을 풀어가듯 하나씩 진행됐다.

 투라야가 투자한 125억원은 아직도 여유자금으로 남겨뒀다. 2005년부터는 흑자로 돌아섰다. 현재는 서서히 투자한 것을 회수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삼성전자의 3%면 된다=삼성전자가 연간 판매하는 휴대폰(약 2억개)의 3% 수준인 60만대만 판매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위성 휴대폰을 일반 휴대폰의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신 위성 통신프로토콜 기술에서는 삼성전자도 겁나지 않는다.

 이 같은 전략의 일환이 기존 이동통신 단말기에 부가기능으로 위성 이동통신을 접목하는 것이다. 주파수공용통신(TRS) 단말기에 위성이동통신 칩을 탑재하는 식이다. 최근에는 포스데이타와 제휴하고 와이맥스와 위성이동통신을 접목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이미 GSM과 위성이동통신을 결합한 휴대폰은 출시해 놓은 상황이다.

 현재 일반 휴대폰에 위성통신기능을 탑재할 수 있도록 크기를 줄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겁 많은 ‘돈키호테’=류장수 사장은 지금도 직원이 ‘종이’를 가지고 들어오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조금 편해지기는 했지만, 창업 이후 몇 년간은 그만두겠다는 직원들의 얘기가 ‘협박’으로 들렸다고 한다. 그만큼 쉽지 않았다.

 4반세기 동안 국책연구기관의 울타리 안에 있던 무모한 돈키호테도 겁은 났던 모양이다.

 중소벤처기업이 연구개발(R&D)에 ‘모 아니면 도’라는 식의 무모한 투자는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고 한다.

 일반적인 경영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대다수가 연구원인 직원들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안다.

 사전 목표 보고를 하지 않고, 하루 동안 진행된 결과만 팀장에게 구두로 간단히 보고하는 식이다. 하지만 평가는 한다. A, B의 인사평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연구에 자극을 주기 위한 것이다. 이런 방법은 그 자신이 연구가 굉장히 지루한 작업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합병, 새로운 도약을 꿈꾸다=그동안은 단말기 하나만으로 사업을 끌어왔다. 하지만 이제 본격적인 위성사업을 할 생각이다. 반도체·LCD 장비 제조회사인 코닉시스템과의 합병은 이 같은 꿈을 실현하기 위한 또다른 시도다. 코닉시스템의 장비 제조기술을 접목, 인공위성 제조 등 본격적인 위성사업에 뛰어들 계획이다.

 코닉시스템과 아태위성산업의 올해 예상 매출은 각각 800억원, 350억원이다. 합병 첫해인 2009년 1754억원, 2010년 2330억원, 2011년 2781억원의 매출을 계획하고 있다.

 류 사장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한다. 창업 당시의 소망했던 ‘위성’을 산업으로 만들어보겠다는 꿈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소 5000억원, 1조원은 돼야 산업이라고 말을 붙일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류장수 회장은

 1952년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를 떨어지고, 화가 나서 검정고시로 고교 과정을 대신했다. 서울대학교 기계공학과를 나와서 KAIST에서 생산공학으로 석·박사를 했다.

 결혼 때부터 지금까지 30년간 거의 매일 3∼5㎞씩 조깅을 한다. 한 달에 한 번 이상 출장을 가는 중동에서도 예외는 없다. 러닝머신보다는 밖에서 뛰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뛰면서 그날 할 일을 생각한다.

 그림을 좋아한다. 가끔 시간나면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이나 박물관 갤러리 등을 찾는다. 도자기나 유물은 잘 모르고 그림만 보다가 온다.

 예전에는 크로키도 곧잘 했지만, 오랫동안 손을 놓아서 요즘은 잘 못한다. 집안의 반대만 없었다면 화가가 됐을지도 모른다.

 대학때 소개팅으로 만난 부인과의 사이에 1남 1녀가 있다.

 아들은 호텔경영학을 전공,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딸은 의대 본과 4학년이다. 자식들에게 어느 정도의 재산을 물려줄 수는 있지만 경영권을 물려줄 생각은 없다.

 중소기업 CEO들이 경영권을 자식에게 물려주려는 것은 욕심이라고 생각한다. 자식이 사업을 잘 이끌어갈 만큼 똑똑할 확률은 그렇게 높지 않다고 생각한다. 3대가 대를 이어 똑똑할 확률은 지극히 적다고 겸손하게 말할 줄 아는 그의 또 다른 이름은 영원한 엔지니어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