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산업의 미개척지로만 여겨졌던 중동이 달라졌다. 최근 아랍 지역의 인터넷·컴퓨터·통신·전자제품 등 각 분야 시장 규모는 연간 두 자릿수 규모로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쿠웨이트 등 대표적인 산유국이 석유 자원 고갈에 대비한 차세대 주력산업의 하나로 정보기술(IT)산업에 눈을 돌린 결과다. 특히 두바이는 지난 2000년 두바이인터넷시티(DIC:Dubai Internet City)를 조성, 8년 만에 IBM·구글·HP·오라클 등 유수의 글로벌 IT기업을 유치하며 중동의 IT허브로 부상하고 있다. 전자신문은 2회에 걸쳐 중동의 변화무쌍한 IT시장을 조명해 본다.
◆(상)오일머니가 몰려온다
미국발 금융 쓰나미가 전 세계를 강타했던 지난달 19일 두바이 국제컨벤션센터에서는 중동·아프리카 최대 IT전시회 자이텍스(GITEX:Gulf Information Technology Exhibition)가 막을 올렸다. 삼성전자·구글·마이크로소프트 등 83개국 3300개 기업이 참가한 이 전시회는 닷새 동안 총 13만명의 관람객이 몰려 열기를 띠면서 같은 기간 글로벌 금융한파로 얼어붙은 중동 증시와 절묘한 대조를 이뤘다. 자이텍스에 등장한 두바이 최고통치자 셰이크 무함마드는 “자이텍스의 성장은 (두바이 IT산업이) 질적으로 도약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두바이 정부가 주도한 IT전략이 성공적으로 결실을 본 것”이라고 평가했다.
◇GCC IT 투자, 중·아지역 23% 차지=전문가들은 두바이가 속한 UAE가 올 한 해 IT와 통신산업에 114억달러(418억디르함)를 투자했으며 오는 2011년께면 투자 규모가 지금보다 30% 늘어난 148억달러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UAE와 함께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카타르·바레인 등 중동의 주요 국가가 매년 시장에 쏟아붓는 오일 머니는 메마른 사막과도 같았던 이 지역 IT시장을 불과 3∼5년 만에 세계가 괄목하는 오아시스로 탈바꿈시킨 원동력이다.
중동·아프리카 지역에서 통신을 제외한 순수 IT 분야 투자 규모는 올해 총 400억달러다. 이 중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를 필두로 한 걸프지역 6개 국가(GCC)가 투자한 비용은 90억달러로 중동·아프리카 전체의 23%에 가까운 수준이다. 특히 석유강국 사우디아라비아와 UAE가 각각 37억6500만달러와 29억8946억달러를 투자하며 가장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걸프국가들과 함께 중동·아프리카 지역 주요 경제권으로 꼽히는 이집트의 IT시장도 규모는 작지만 3년 연속 평균 20% 이상의 높은 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이집트 IT시장은 6억5000만달러로 2006년의 4억5000만달러에서 거의 50% 가깝게 팽창했다.
◇잠재력 무한, 2011년까지 두 자릿수 성장=물론 미국이나 유럽과 비교하면 중동 IT시장은 걸음마 단계다. 초기 인프라 구축 단계에서 대규모로 구매하게 마련인 서버·컴퓨터·네트워크 장비 등 IT하드웨어가 전체 투자액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시장의 성장곡선을 놓고 보자면 이제 막 올라가기 시작하는 상승곡선 지점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스토리지는 매년 40∼50%의 가파른 성장률을 구가하고 있다. 하드웨어 산업은 정체기에 접어들었고 소프트웨어나 서비스 산업 비중이 더 큰 서구 시장과는 판이한 구조다. 그러나 이는 한편으로 중동 IT시장이 아직 높은 성장 잠재력을 내포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또 패키지 소프트웨어나 보안솔루션 분야도 하드웨어만큼 폭발적이지는 않지만 꾸준히 성장하고 있으며 이웃 이집트나 인도로부터 콜센터와 아웃소싱 인력을 공급받는 등 IT산업이 전반적인 균형을 갖춰가고 있는 모양새다.
시장조사기관 IDC는 최근 펴낸 보고서에서 중동에서 가장 활발한 걸프지역 IT시장이 2011년까지 매년 12%의 두 자릿수 성장률을 유지할 것으로 분석했다.
◇크고 비싼 전자제품 인기=전자·정보통신제품 시장도 중동 석유 부호들의 막강한 구매력에 힘입어 나날이 성장하고 있다. 무조건 크고 비싼 것을 선호하는 이들의 구매습관은 집과 자동차뿐 아니라 휴대폰이나 PC·TV·냉장고에도 해당되기 때문이다. 또 이곳 부자들은 신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멀쩡한 TV나 냉장고를 버리고 새 것으로 다시 사는 일이 다반사다.
내수와 수출을 통틀어 걸프지역의 전자제품 시장 규모는 지난해 170억달러(624억4000만디르함)였다. 중계무역거점인 두바이에서 이란 등지로 재수출하는 규모가 크겠지만 내수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걸프지역 가전제품 전문 유통체인 재키스 일렉트로닉스는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30% 성장했다고 발표했다. 무선인터넷이 보급되면서 노트북PC를 가족 구성원마다 한 대 이상씩 새로 구매하는 가정이 많고 휴대폰도 노키아 N96이나 RIM의 블랙베리 등 고가의 스마트폰 수요가 높다.
TV시장 점유율 1위인 파나소닉의 비에라 103인치 평판TV는 중동에서만 2억3000만디르함의 매출을 기록할 정도로 불티나게 팔렸다. 파나소닉이 이번 자이텍스 전시회에서 150인치 PDP TV 신모델을 공개했으니 103인치 TV의 판매기록이 경신될 날도 머지않은 셈이다.
두바이(아랍에미리트)=조윤아 IT칼럼니스트 forange21@naver.com
◆ 셰이크 무함마드의 IT리더십
셰이크 무함마드(59)는 두바이의 통치자이자 아부다비·두바이·샤르자·아지만·움알카이와인·라스알카이마·푸자이라 7개 에미리트(부족국)로 구성된 아랍에미리트의 부통령 겸 총리다.
그는 걸출한 리더십을 발휘, 걸프 연안의 작은 어촌에 불과했던 두바이를 세계적인 중계무역거점이자 금융중심지로 키워낸 주인공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가 IT 분야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두바이 통치권을 승계하기 이전인 2000년부터 ‘두바이인터넷시티’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해 중동에 진출한 다국적 IT기업들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으며 ‘실리콘 오아시스’ 등 후속 프로젝트를 의욕적으로 추진하며 IT를 차세대 유망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중동에서 가장 앞선 UAE의 e정부 서비스도 모두 총리인 셰이크 무함마드의 작품이다. UN이 실시한 2008년 세계 각국 e정부 역량 지수 측정 결과, UAE는 192개 UN회원국가 중 32위를 차지했는데 특히 두바이정부가 운영하는 두바이 e정부(DEG)가 대표적인 서비스로 손꼽힌다.
또 셰이크 무함마드는 인터넷을 국민 여론 수렴 및 선전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그의 공식 홈페이지(www.sheikhmohammed.co.ae)는 치적과 외교활동, 통치철학을 홍보하는 다양한 사진·동영상 갤러리와 전자메일, 플래시이미지 카드, 심지어 자신이 직접 창작한 시 낭독 사이트 등으로 현란하게 꾸며져 있다.
올해 10월 웹사이트제작 전문기업 비네트는 셰이크 무함마드의 홈페이지를 유럽·아시아·중동·아프리카 지역 자사 고객 웹사이트 중 ‘최고 웹사이트’로 선정하기도 했다.
이 홈페이지에 게재된 셰이크 무함마드 어록 중에서도 IT에 관한 그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20세기의 세계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또는 부국과 빈국으로 구분됐다면 21세기의 세계는 정보를 갖고 있는 집단과 그렇지 못한 집단으로 나뉜다.”
“아이디어와 사실이 원활히 소통되면 정보와 지식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지식은 곧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