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에도 사람들로 넘쳐나는 베이징 중관춘에 있는 딩하우 전자상가.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이 몰리는 곳은 단연 휴대폰 상가다. 독일의 시장조사 기관인 GfK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6대 전자제품인 휴대폰·LCD·노트북PC·디지털카메라·PDP·캠코더의 중국시장 판매총액은 3500억위안(약 70조원)이다. 이 가운데 휴대폰 시장의 규모는 약 1710억위안으로 6대 전자제품 판매액 중 절반을 차지한다. 올 상반기까지만 약 8000만대의 휴대폰이 중국 시장에서 팔렸고 휴대폰 가입자는 6억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딩하우 전자상가 지하 1층에 있는 휴대폰 매장에는 갖가지 휴대폰이 판매대에 진열돼 있다. 다양한 디자인과 기능, 가격이야말로 중국 휴대폰 시장을 더욱 활력으로 넘쳐나게 하고 있다. 중국 휴대폰 시장은 1만위안(약 200만원)이 넘는 초고가 스마트폰에서부터 500위안 이하의 저가 기종까지 다양한 가격대가 형성돼 있다. 중국 휴대폰의 평균 가격은 2000위안 정도지만 폭넓은 소비자층 때문에 광범위한 가격층이 존재했다.
딩하우 상가엔 홍콩을 통해 불법적으로 들어온 잠금 장치가 해제된 아이폰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4400위안(약 88만원)의 비싼 가격이지만 유행을 따르는 중국 젊은 소비자들에게 제법 인기가 있다. 아이폰 옆엔 안드로이드가 탑재된 HTC의 구글폰도 같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중국 시장에서 휴대폰은 이미 통신수단을 넘어 패션이 됐고, 재력 과시의 수단이 됐다.
하지만 지난해 시장 판매 대수 확대에도 불구하고 매출액은 전년도 대비 중국 휴대폰 시장 전체의 매출은 0.3% 떨어졌다. 다수의 중국 사람에겐 가격이 휴대폰 선택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시장에서 4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노키아는 저가형 모델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노키아도 두려워할 만한 상대는 최근 급증하고 있는 짝퉁을 포함한 중국산 초저가 휴대폰이다. 중국에선 ‘산자이지’라 불리는 불법 휴대폰 제조 공장이 급격히 생겨나면서 휴대폰 제조업체를 위협하고 있다. 산자이지는 ‘산에 있는 은밀한 공장’이란 뜻으로 불법적인 공장에서 만들어진 짝퉁을 포함한 불법제조 휴대폰을 말한다.
김병호 KOTRA 칭다오 무역관은 “선전의 2㎡ 남짓의 소규모 판매상에서 이러한 초저가 휴대폰이 하루에 500∼1000개가 판매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산자이지 휴대폰의 규모를 정확히 집계할 수는 없지만 휴대폰 업체에 손해가 막중할 것으로 추정된다. 500위안 정도의 가격으로 유명 브랜드의 휴대폰과 유사한 성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에 중국의 일부 소비자가 이 휴대폰에 열광하고 있다.
딩하우 상가에서도 이러한 초저가 모방 휴대폰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삼성(SAMSUNG)의 로고를 교묘히 바꾼 산성(SANSUNG) 휴대폰을 포함해 다양한 중국산 모방 휴대폰이 범람하고 있다. 에스컬레이터 주변에 있는 한 상가에는 이러한 유사 휴대폰과 기능을 교묘하게 짜깁기한 휴대폰들이 500위안 정도의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
이러한 휴대폰의 유행을 이끄는 요소는 단연 저렴함이다. 이를 무기로 이 휴대폰들은 아시아는 물론이고 동유럽까지 수출되고 있다. 정식으로 생산된 정품 휴대폰과 달리 증치세와 소비세를 전혀 납부하지 않으며 각종 개발비, 광고비, 전자파 인증 비용 등과 고객사후관리 비용 지출도 없어 정식 휴대폰과 가격 면에서 경쟁 자체가 되지 않고 있다. 중국 소비자를 겨냥, 위조 수표 감별기를 단 휴대폰이나 페라리 등 유명한 자동차 모양을 흉내낸 휴대폰 등의 제품이 인터넷을 통해 판매되고 있다.
김병호 무역관은 “더욱 위협적인 것은 이러한 업체들이 최근 디자인이나 아이디어 혁신으로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불법휴대폰 공장에 대한 단속이 늘어나고 있어 주춤하고 있지만 일부 계층의 전유물로만 인식되던 고성능 휴대폰을 싼값에 사용할 수 있어 마니아층까지 형성됐다”고 덧붙였다.
베이징(중국)=이동인기자 dilee@etnews.co.kr
◆중관춘= 중관춘전자상가는 한국의 용산과 여러모로 닮아 있다. 선인상가를 중심으로 모여들었던 한국의 전자상가처럼 하이룽(海龍) 전자상가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중관춘은 1988년 ‘베이징시 신기술 산업개발시험구’ 지정 이전부터 전자 시장이 형성돼 있었다. 베이징대, 칭화대가 주변에 있고 우다오커우(五道口)와 인접한 이곳에는 수많은 전자 상가와 백화점이 늘어서 있다. 용산이 판매 상가를 중심으로 발달됐다면 중관춘은 외국기업들의 지사와 연구소들이 함께 있다. 이곳에는 전자 관련 업체들과 생명 과학 신소재 등 첨단 과학 기술 분야와 관련된 기업들이 있다. 따라서 테헤란벨리와 용산 전자상가의 집합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