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하지만, 아무런 자료도 없습니다. 없는 자료를 어떻게 주나요.”
“그때 자료는 그때 자료고 지금은 검토 중인 계획이 없습니다.”
지난 수주간 통일부에 수차례 전화했지만, 그 마지막 통화는 기자를 당황케 하기에 충분했다. 개성공단 담당 공무원들과 나눈 대화였는데, 그중에서도 압권은 개성공단 2·3단계 담당자와의 통화였다. 첨단 기술 산업 육성을 골자로 한 개성공단 2·3단계 개발 계획은 전자신문 독자들의 관심이 높은 이슈다. 그는 아무런 자료도, 검토 중인 계획도 없다고 했다. 예전에 검토했던 계획이라도 달라고 했더니, 그 역시 ‘모르쇠’였다.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검토했던 자료도 없고, 현재 검토 중인 자료도 없다는 설명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개성공단 2·3단계 담당자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앞뒤 논리가 맞지 않는 설명에 어떤 일을 하느냐고 되물어야 할 판이었다.
전화를 끊고 곰곰이 생각해봤다. 이것이 남북 경협, 개성공단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통일부 적지 않은 공무원은 개성공단 개발 계획을 세우느라, 관계 기관 및 기업들과 협의하느라 수차례 밤을 새웠을 것이다. 그리고 언론에서 공식, 비공식적으로 청사진도 발표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모든 그림을 지우고 계획을 무효화하고 모른다고 대답해야 하는 실정이다. 기자가 잠시 느낀 당황은 통일부 공무원이 느꼈을 비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부서 존폐 논란까지 벌어졌던 통일부에서 개성공단 2·3단계 계획이 우습게 연기되거나, 사실상 취소되는 것쯤이야 어쩌면 있을 법한 일일 것이다.
또 곰곰이 생각해봤다. 북한 정부가 달라질 것이라고 믿고, 또 남한 정부의 지원책을 믿고 ‘볼모’가 돼 버린 개성공단 입주 88개 기업의 불안감에 비하면, 통일부 공무원이 느끼는 당혹감 역시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고. 입주기업들은 부도위기라며 지금 절규 중이지 않던가.
류현정기자 dreamsho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