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는 사용자인 대기업이 기술임치제도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사실상 기술임치 문화가 발전돼왔습니다. 그들 쪽에서는 소기업이 도산하거나 파산, 폐업하게 되면 그 기술을 계속적으로 유지·보수해 줄 수 있는 제도가 필요했던 것이지요.”
존 레이 영국 NCC 총괄책임자는 1980년대 초 시작된 유럽 기술임치 역사의 배경을 이같이 설명했다. 제도 초창기 유럽에서는 대기업과 밀접한 관계에 놓여있던 은행과 변호업계가 일부 기술이나 제품을 관리하면서 임치기관의 역할을 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역할의 제3기관의 필요성이 높아졌다.
레이 총괄책임자는 “제도 초기에는 SW 등 IT 관련 산업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우리 회사에 대해 일부 지원을 했으나, 8년 전부터는 완전 민영화되면서 영국에서 임치산업을 주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그가 몸담고 있는 NCC는 유럽 내 기술임치기관 중 가장 선도적인 기업으로 꼽히고 있으며, 1만5000여개의 대기업을 고객으로 두고 있다. 영국에서만 연간 계약건수가 7000건이 넘는다. 이 중 SW 임치가 전체 계약건의 97%를 차지할 정도다. 최근 들어서는 소규모 기업들의 기술임치에 대한 인식도 점차 확산되고 있다.
레이 총괄책임자는 “대기업이 간혹 기술을 달라고 요구할 때 소규모 그룹의 기업은 임치제도를 사용하겠다면서 적극 대응하고 있다”며 대기업에서 시작된 기술임치 문화가 소규모 그룹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비록 우리보다 30여년 가까이 앞서 시작된 유럽의 기술임치 문화지만 그간 겪어온 시행착오도 만만치 않다.
레이 총괄책임자는 “기술을 임치하는 과정에서 기술 검증이 가장 큰 문제였다”며 “실제로 제도 초기에는 단순하게 기술이나 제품을 임치기관이 맡아주는 형태였으나, 이 과정에서 기술개발업체들이 잘못된 정보나 기술을 맡기는 일이 허다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나중에 전문성을 갖춘 임치기관이 출현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가 됐다. 이 같은 숱한 시행착오를 거쳐 NCC는 현재 사용자의 환경에서 제품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직접 확인·검증한 후 기술을 맡아주고 있다.
레이 총괄책임자는 최근 한국의 기술임치제도 도입 움직임에 대해 “현재처럼 경기가 오히려 불안정한 상황에서 오히려 기술임치제도가 더 확산될 수 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한 뒤 “하지만 무엇보다도 사용자인 대기업의 기술임치에 대한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고 충고했다.
제주=신선미기자 sm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