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흔히 프린터를 종이문서를 출력하는 장치로만 알고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음료수병에서 가전제품, 기계부품까지 문자가 새겨진 온갖 물건이 있다. 종이가 아닌 물건에 문자, 그래픽을 찍으려면 산업용 프린터로 불리는 장비가 필요하다.
안산에 있는 로닉스(대표 김훈 www.ronixkorea.com)는 산업용 프린터에서 독보적인 벤처기업이다. 전 세계 산업용 프린터 시장 규모는 연간 20억달러, 내수시장은 1000억원에 달한다. 유감스럽게도 국내 기업들은 산업용 프린터 시장에 거의 명함도 못 내민다. 유럽, 미국계 글로벌 기업이 거미줄처럼 쳐놓은 특허장벽을 넘기도 어렵거니와 사무용 프린터에 비해 보수적인 산업용 프린터 시장의 특성상 기술력을 검증받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지난 2001년부터 로닉스는 관심을 끌지 못하던 산업용 프린터 시장에 뛰어들었다. 불과 10여명의 직원으로 밤낮없이 연구에 몰두하면서 대기업도 못 만들던 산업용 프린터 장비를 차례로 국산화했다.
로닉스가 자랑하는 국산기술은 피에조 잉크젯 프린터로 관련 특허를 이미 확보한 상황이다. 산업용 프린터 중에서 용도가 가장 넓은 솔벤트 잉크를 사용하는 이 회사의 산업용 프린터 ‘록시(ROXY) 시리즈’는 뛰어난 품질을 인정받아 올해부터 본격적인 해외수출에 들어갔다. 록시 시리즈는 0.8∼70㎜ 크기의 글씨를 최대 1000DPI의 고해상도로 인쇄한 것처럼 미려하게 마킹할 수 있다. 친환경 UV잉크를 지원하고 유럽 인증(CE·CB)도 획득했다. 우수한 품질이 알려지면서 해외에서 주문이 쇄도했다. 이집트와 일본, 터키, 스페인에 대리점을 확보했고 내년에는 유럽지역에 대리점을 20여개로 늘릴 계획이다.
조그만 벤처기업이 이 같은 성과를 거두기까지는 매출의 절반 가까이를 연구개발(R&D)비용으로 쏟아 붓고 밤을 새우는 노력이 있었다. 로닉스의 산업용 프린터는 삼성을 포함한 국내 대기업과 중소기업에서 널리 쓰인다. 로닉스는 국내 기업들이 도입한 외산 프린터 장비를 생산공정에 맞게 커스터마이징하는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산업용 프린터 분야에서 쌓은 노하우 덕분에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생산라인에서 산업용 프린터가 정확한 마킹작업을 하도록 돕는다. 외국 기업들이 소홀히 하는 산업용 프린터의 커스터마이징을 거쳐 다양한 현장경험과 기술력을 쌓고 있다. 프린터 원조기업 HP도 내수 시장에서 로닉스의 성과에 관심을 갖고 서멀 잉크젯(TIJ:Thermal Inkjet) 분야의 기술협력을 논의하고 있다. 로닉스는 오는 2010년 125억원 매출, 세계 산업용 잉크젯 프린터 시장의 0.5%를 차지한다는 계획이다. 얼핏 소박한 목표 같지만 산업용 프린터 분야에 우리 벤처기업이 여기까지 온 것도 처음이다. 김훈 로닉스 사장은 “고부가가치 산업용 프린터 시장에서 로닉스를 세계 10위 안에 드는 기업으로 키우겠다”고 다짐했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
◆김훈 사장 인터뷰
“우리 손으로 만든 산업용 프린터의 기술력이 해외에서도 인정받아 수출하는 데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김훈 로닉스 사장(32)이 대기업도 엄두를 못 내는 산업용 프린터 시장에서 적잖은 성과를 거둔 비결은 오로지 성실한 노력 덕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외국계 산업용 프린터 회사에 근무하면서 관련 시장의 잠재력에 눈을 떴다. “국내 기업들이 거의 신경을 안 쓰는 산업용 프린터 시장의 부가가치가 높은 데 매력을 느꼈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창업을 하기로 했지요.”
김 사장은 자체 특허기술을 위한 R&D에 밤낮없이 매달리는 한편 외산 산업용 프린터의 커스터마이징을 거쳐 현장 노하우를 익혔다. 조그만 벤처기업 장비의 도입을 꺼리는 불신의 벽도 넘어야 했다. 수년간에 걸친 김 사장과 직원들의 노력은 올해 들어 마침내 꽃을 피웠다. 해외 시장에서 앞다퉈 로닉스의 사업용 프린터를 구매하겠다는 제의가 쏟아진 것이다. “사무용 프린터에 비해 산업용 프린터는 아직 한국 기업들이 도전할 여지가 상대적으로 넓습니다. 로닉스는 한국을 대표하는 산업용 프린터전문업체로 성장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