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과’는 사과(apple)에 대한 내용이지만 정작 사과가 나오는 장면은 단 한 번이다. 주인공인 현정(문소리)이 과거 남자친구인 민석(이선균)을 만나 미안한 마음에 건네는 것이 사과다. 영화 사과는 사과를 말하고 있지만 사과가 메인 롤은 아니다. 그렇다면, 감독은 무슨 이유로 제목을 사과로 뽑았을까.
여기 4년을 기다린 작품이 있다. 문소리·이선균·김태우 등 유명 배우가 나온 작품이지만 일이 많이 꼬였다. 개봉을 기다리던 대학 신입생은 이제 신입 사원이 됐다. 무슨 문제가 있었을까. 그러나 ‘생활 멜로’라는 별칭을 가진 영화 사과는 과일 사과만큼이나 멀쩡하고 오히려 신선하다. 사과에는 두 남자와 한 여자가 나온다. 한 남자인 민석은 7년 사귄 현정에게 별안간 이별을 고한다. 당황한 마음에 현정은 매달려보지만 이내 자신을 따라다니는 상훈(김태우)과 결혼한다. 결혼 생활이 순탄할 리 없다. 삐걱거리는 결혼은 상상을 만들고 그 상상은 세 명을 새로운 세계로 인도한다.
영화를 만든 강이관 감독(37)을 서울 반포 서래마을에서 만났다. 영화아카데미 출신인 그는 사과가 첫 작품이다. 지난 1998년 아카데미를 졸업했으니 10년 만이다. 그는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조감독 출신이기도 하다. 4년 만에 개봉된 소감을 물었다. “사실 그 당시에는 개봉된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전날 잠도 잘못 자고. 일단 개봉한 것에 감사했습니다. 물론 3주 만에 와이드 개봉관에서 내려왔지만요.”
사실 지금 사과를 보기는 그리 쉽지 않다. 와이드 개봉이 끝난 사과는 현재 서울 광화문 시네큐브에서만 상영되고 있다. “나름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하는데 관객을 만날 기회가 줄어드니 아쉽죠. 4년 동안 많이 가다듬은 영화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지방 관객 항의가 많아요. 지방에서는 왜 상영하지 않냐고요.” 4년의 기간 동안 사과는 해외에서 더 유명해졌다. 토론토국제영화제·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등에서 수상하며 그 진가를 인정받았다.
이렇듯 영화는 거의 막을 내리는 분위기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강 감독은 점점 더 바빠지고 있다. 소리 소문 없이 영화를 보고 온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에 여러 곳의 언론에서 뒤늦게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찍을 때만큼 바쁘지는 않지만 사과를 본 관객이나 언론 관계자분들이 꾸준히 연락을 해오고 있어 인터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두고 보면 볼수록 매력이 나오는 영화라나요. 물론 저는 기분 좋습니다.”
볼수록 매력이 나오는 영화. 그렇다. 사과의 세간에 대한 평가는 담백하고 평범하다는 것이다. 배우들의 옷차림도 그렇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동선도 튀지 않는다. 특히, 장면과 장면은 군더더기 하나 없이 매끄럽다. “영화에 리얼리티를 많이 담으려고 했어요. 영화를 처음 만들 때 50쌍의 연인들을 인터뷰했고 이들에게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제가 사랑을 해본 경험이 많이 없으니. 그래서 다소 건조하지만 실제로 있을 수 있는 일들을 뽑아냈습니다. 그것을 영화에 담으려고 했지요.”
이와 함께 배우들의 직업이나 설정도 있는 강 감독 주변이나 배우들의 경험을 많이 참조했다. “상훈이 구미로 내려간다는 설정은 대학 선배에게 얻었어요. 상훈, 현정 부부가 냉전 중이어서 물리적 공간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는데 구미쯤이 좋겠다고 생각했죠. 부산은 너무 멀고 대전은 가까우니까요. 그래서 마침 구미에 있던 대학 서클 형에게 물어봤어요. 그곳에 뭐가 있는지. 그래서 얻어낸 것이 상훈의 직업(휴대폰 핵심 칩 기술자)이죠.”
강 감독의 다음 작품이 궁금해질 무렵, 다소 모호한 사과의 결론에 대해 물었다. 결별 위기에 있던 상훈, 현정 부부가 서로에게 사과하고 한 침대에 눕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난다. 이 장면은 많은 논란을 낳았다. “같이 산다. 이혼한다 등의 의견이 서로 엇갈렸어요. 나이마다, 성별마다 결론이 다르더라고요. 물론 제 생각이 있지만 영화는 보는 이의 예술입니다. 각자 결론을 내리는 거지요. 다음 작품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한정훈기자 existe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