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기업과 계약해 얻은 연구결과물에 대해 지식재산권 단독 소유 결정을 내린 카이스트(KAIST)와 이에 반발하는 국내 대기업들이 갈등을 빚고 있다.
KAIST는 지난 2월부터 연구결과로 발생하는 지재권에 대해서는 대학이 단독으로 소유하고, 기업에는 특허에 대한 전용 및 통상실시권 등 라이선싱 옵션권만을 부여하는 내용의 새로운 지재권 기준을 마련, 시행에 들어갔다. 특히 지재권 단독 소유 선언은 KAIST가 국내 대학 중 처음으로 시도하는 것이어서 성공 여부에 관심이 모아졌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기업이 연구비를 대고, 산학 연구결과로 발생되는 지재권은 해당 기업에서 권리를 가져가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제도 시행 후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은 연구비를 기업에서 전액 부담한 결과물의 지재원을 대학이 단독으로 소유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이들 기업들은 연구결과물이 상용화돼 제품으로 판매되는 경우가 많은데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 지재권 없이는 다른 경쟁사들로부터 제품보호가 어렵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A그룹 계열사의 한 고위 임원은 “외국에서도 이렇게까지 대학이 지재권 소유를 단독으로 가져가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며 “한국 문화에서 이를 받아들이기에는 현실적으로 문제가 많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KAIST가 계속해서 이 같은 지재권 정책을 고수한다면 조만간 지재권을 둘러싼 분쟁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대안으로 대학·기업의 지재권 공동 소유를 주장했다.
이 같은 대기업들의 반발은 연구현장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KAIST 교수진과의 공동 연구과제 수를 급격하게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KAIST 전산학과 모 교수는 “그동안 삼성·LG 등과 공동 연구과제를 많이 추진해왔는데, 올해 대학이 지재권 단독 소유 방침을 밝히고 난 후부터 이들 기업들이 신규 과제를 거의 중단하고 있다”며 “이보다 큰 문제는 우리 학생들이 공동 과제를 활용해 기업체와 접촉할 수 있는 통로가 줄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KAIST 측은 제도 시행 전부터 대기업 측의 반발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며, 산학 협력 성과로 도출된 지재권을 기업이 일방적으로 가져가는 그동안의 관행은 더이상 합리적이지 않다고 반박하고 있다. 학교 측은 대기업 신규과제를 제외하고는 올해 전체적인 산학 협력 과제 규모가 지난해보다 40억여원 가까이 오히려 늘었다면서 대기업 측의 수용을 촉구했다.
양현승 KAIST 연구처장은 “세계 최고의 대학으로 거듭나기 위해 대학의 시스템과 정책도 세계적인 수준에 맞춰 시행하고 있는데 대기업들이 이런 새 정책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기업과의 불평등 계약 과제는 더이상 없어야 한다는 인식에 따라 현 지재권 정책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대전=신선미기자 sm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