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의 시계는 짧다. PC와 관련 부품의 최대 격전지인 이곳에서 하루에도 몇 개씩 회사가 뜨고 진다. PC 액세서리, 부품을 제조·유통하는 업체는 말할 것도 없다.
용산을 근거지로 15년을 생존한 저장장치 전문업체 새로텍은 그래서 돋보인다. IMF 한파가 몰아쳤을 때도, 글로벌 기업이 한국 시장에 진출해 경쟁업체가 하나 둘 사라질 때도 새로텍은 건재했다. 놀랄 만큼 깜짝 성장한 적은 없지만 늘 꾸준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초 벌인 시장 조사에서 새로텍의 시장 점유율을 업계의 반에 달하는 46%로 추정했다.
“삼성전자가 저희를 그렇게 보나요? 사실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하지만 업계 1위를 고수하고 있는 건 맞습니다.”
새로텍은 외장하드 저장장치 사업을 시작한 이래 시장에서 주도권을 놓은 적이 없다. 박상인 새로텍 사장에게 비결을 물었다. “목을 메고 하느냐, 답은 거기에 있습니다.” 사실 사업을 하면서 목숨을 걸고 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대기업은 하다가 접을 수도 있는 게 이 사업입니다. 대기업 입장에서 국내만 보자면 얼마 되지도 않는 시장이에요. 손실이 나면 다른 사업부에서 보전해도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밖에 없습니다.”
최근 외장 하드 시장엔 한바탕 전운이 감돈다. 올해 7월 LG전자가 뛰어든데 이어 삼성전자도 사업 진출을 알렸다. 대한민국 1·2위 대기업이 한해 1000억원 안팎 규모의 시장에 나란히 숟가락을 올렸다. 그동안 외장하드 시장을 주도한 용산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아직은 중소기업이 더 강할 수밖에 없습니다.” 박상인 사장은 외장 하드 사업이 발빠른 의사결정으로, 사용자의 요구를 즉각 반영할 수 있는 중소기업에 아직은 해볼만한 분야라고 말한다. 이에 걸맞게 새로텍은 업계에서 가장 많은 제품군을 갖고 있다. 한정된 두 세개 모델로 규모의 경제 효과를 노리는 대기업과 달리 ‘위즈플랫·큐티·하드박스’ 등 제품군이 가장 두텁다. 지난달 여성을 타깃으로 선보인 외장 하드 ‘플로라’, 최근 남성 사용자를 공략해 내놓은 ‘힘’ 등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제품도 어느 업체보다 빨리 내놔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더욱이 외장하드 시장은 불황에 성장세가 다소 꺾였지만 분명 크고 있다. 데이터의 고용량화, 멀티미디어 파일의 활용이 가파르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플로라, 힘처럼 새로운 시도로 지속적으로 이슈를 만들어 나갈 생각입니다. 소비전력을 개선하고, 다양한 인터페이스를 지원하는 제품도 계속 연구하고 있습니다.” 저장장치 시장의 새 이슈인 네트워크 스토리지(NAS)도 눈여겨 보고 있다. “그동안 해온 것처럼 시장이 원하는 제품을 가장 빨리, 안정된 품질로 내놓는다는 원칙을 지켜야죠.”
열다섯살 새로텍의 나이만큼, 또다른 15년을 기대해 봄직한 이유다.
차윤주기자 chay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