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기술임치제도는 국가가 강력한 의지를 갖고 추진한다는 점에서 앞서 제도를 시행한 국가들과 차별화된다. 전 세계적으로도 정부가 직접 관련 법까지 만들어 기술임치제도를 도입한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불균형 관계에 놓여 있는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을 도모하기 위한 정부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제도 초창기인만큼 수요 창출 등 넘어야 할 산도 적지 않다.
이에 전자신문은 지난 21일 서울 대·중소기업협력재단 회의실에서 ‘전문가 지상 좌담회’를 열고 기술임치제도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대책방안을 모색했다.
이날 좌담회에서는 현 기술임치제도를 명문화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상생협력법)이 수·위탁 관계를 전제로 한 기업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제도 활성화를 위해서는 적용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또 근본적으로는 현행 과제 발주 시 SW 저작권을 정부 측에 귀속하도록 한 국가계약법의 모순을 개선, 개발자에게 소유권을 주고 관련 기술을 임치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지적이 강하게 제시됐다.
제도 홍보의 필요성도 대두됐다. 아무리 좋은 제도인들 수요자가 찾지 않으면 사장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다. 참석자들은 제도가 시범 운영되고 있는데도 아직까지 많은 기업이 인식을 하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다며, 기술임치제도 발전연구회를 비롯해 언론사·법조계 등을 통한 다양한 홍보 활동을 전개해 제도 확산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참석자(가나다순)
△손승우 단국대 법학과 교수
△윤도근 중소기업청 기업협력과장
△이현 법무법인 렉스 변호사
△조태용 대·중소기업혁력재단 상생연구팀장
△허병근 티맥스소프트 상무
*사회:윤원창(전자신문 지역총국장)
◇윤원창 전자신문 지역총국장(사회)=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적으로 실물 경제 위축에 이어 디플레이션으로까지 파장이 확대되고 있다.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모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대·중소기업이 힘을 합쳐 헤쳐나가는, 즉 기술을 공유하고 상생해야 할 필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이 위기 극복 과정에서 협력 기업 간 기술을 둘러싼 분쟁 발생 가능성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이런 정황을 감안하면 정부가 기술자료 임치제도를 마련한 것은 더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정부 시각에서 기술임치제도의 배경과 취지, 그간의 경과 등을 설명해 달라.
◇윤도근 중소기업청 기업협력과장=기술임치제도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양쪽을 모두 보호하기 위한 차원에서 도입했다. 그동안 대기업과 수·위탁 거래관계에 놓여 있는 중소기업은 원치 않아도 자신의 기술을 빼앗기는 일이 많았다. 또 대기업 측에서는 중소기업의 폐업·도산 시 안정적으로 기술을 유지·보수할 수 있는 길이 막막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제도를 처음 도입했다. 우리나라를 제외하고는 세계적으로 국가가 법을 정해 제도를 만든 곳은 한 곳도 없다. 정부는 현재 50여개의 위기 상황을 만들어 모의 임치를 시행 중이다. 모기업과 수·위탁 기업의 위기 상황을 가정하고, 단순임치·구매조건부 등의 사례에 따라 수·위탁 관계에 놓여 있는 총 18개 업체의 상황을 만들어 시범 가동 중이다. 그때그때 상황을 던져보면서 시뮬레이션하고 이러한 결과를 모아서 올 연말까지 고시 운영을 만들 계획이다. 제도를 내년부터 운용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 없다.
◇사회=중기청 정책의 패러다임에 큰 변화가 온 듯하다. 규제 위주에서 상생협력 차원으로, 또 공정거래를 활성화하는 쪽으로 기조가 바뀌고 있다. 기술임치제도의 필요성이나 유효성에 대해 말해보자
◇손승우 단국대 법학과 교수=이 제도는 유럽과 미국에서는 이미 20년 전부터 활용돼온 제도다. 새로운 제도가 생기면 기업 시각에서는 규제라고 볼 수 있지만, 기술임치제도는 이미 선진국에서 검증이 됐고, 시장 기능을 원활하게 해주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한마디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에 도움을 주는 순기능 제도라고 볼 수 있다.
◇이현 렉스 변호사=안정적인 제도인 것은 맞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아직까지 제도 홍보가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제도는 컴퓨터프로그램보호위원회의 SW 임치제도가 시발점이 됐는데, 아직까지도 이 제도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상생협력법이 개정된 이후 대·중소기업협력재단에서 이 제도를 시범 운용하고 있는 것조차도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제도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홍보가 뒷받침돼야 한다.
◇사회=티맥스소프트는 개발자로서 SW 임치제도를 이용해봤을 것이다. 기술자료임치제도의 필요성을 얘기해달라.
◇허병근 티맥스소프트 상무=이 제도의 출발점은 대·중소기업 간 형성되는 갑을 관계인데 이제 그 한계를 뛰어넘어야 할 것 같다. 우리 회사는 중소기업 범위를 벗어난 게 2007년인데, 그런데도 갑 측에서는 우리를 중소기업으로 생각하고 기업 도산 등의 이유로 항상 임치를 원한다. 실제로 SW 임치제도를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제도 홍보는 아직까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제도가 정착이 된다면 우리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대기업은 아직까지도 SW 커스터마이징 시 계약서에 SW 소스코드를 귀속시키는 조항을 적용한다. 그들은 갑 측의 지위를 활용해서 조금의 변경이 있더라도 계속해서 변경해줄 것을 요구한다. 만약 이 제도가 활성화된다면 업체는 사용법만 획득하면 되고,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최근 임치 사례를 볼 때 홍보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는데도 13개 기업이 임치했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다. 이 제도에 대한 기업의 호응은 어떤가.
◇조태용 대중소기업협력재단 상생협력팀장=13개 임치 대상의 대다수가 SW 관련이며, 구매조건부 사업의 결과물을 임치해 놓은 것도 4건 정도다. SW 임치제도가 홍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제도를 도입하게 됐는데, 사실상 이용자의 대다수는 이미 SW를 임치한 경험이 있어 필요성을 크게 느끼고 있다.
◇윤도근=거래 관계에서 공동으로 돈을 넣어 투자한 것에 고민이 많다. 구매조건부 과제는 대기업에 필요한 부품을 정부 지원 아래 중소기업이 개발하는 것인데, 만약 모기업이 조건을 거부하게 되면 중소기업이 꼼짝 못 하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기술임치제도는 상당히 매력 있다. 제조, 디자인 및 프로그램 등이 핵심 임치 대상이다.
◇이현=최근에 임치와 관련해 기업을 대상으로 직접 상담해준 적은 없다. 하지만 가끔 교육 등에서 계약 체결과 관련된 강의를 할 때가 있는데 특히 대기업과 관계를 맺고 있는 중소기업에는 임치제도를 얘기해 주고 있다. 을이 될 가능성이 높은 회사는 이 제도를 꼭 활용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손승우=사실 제도의 유용성은 모두 이해하고 있다. 다만 기업이 자사의 기술을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 임치제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이 문제다. 미국에서는 변호사가 임치제도를 잘 알고 있고, 기업이 계약 시에 이 제도를 활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요컨대 우리나라에서도 기업뿐만 아니라 변호사가 기술임치제도 내용을 오히려 더 많이 알아야 된다.
◇이현=최근 기업계약을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변호사들은 자금 임치 제도를 가끔씩 이용한다. 단, 짧은 기간 동안에 거래대금을 예치하는 때다. 이는 양쪽 당사자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대다수 변호사가 기술 임치제도를 거의 모른다. 필요하다면 변호사들에게도 많이 알려야 한다.
◇사회=개발자 시각에서 현 기술임치제도상 고쳐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허병근=제도 자체보다는 제도의 저변에 걸림돌이 있다. 단적인 면인데, 정부는 SW업체를 대상으로 발주 시 기술 지식재산권을 정부 소유로 한다. 정부가 SW 기술을 마치 건물 짓는 것과 같은 개념으로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이미 기술을 가지고 있는 SW 기업들이 발주에 참여하는 것인데, 이를 근본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는 정부뿐만 아니고 갑 측인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저작권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아서 문제가 있다.
◇손승우=일본은 정부 발주 시 기업이 저작권을 갖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행 우리 정부의 관리지침에는 정부가 갖는 것으로 돼 있다. 이 법이 제대로 시행되려면 국가법 시행령에 저작권을 기업 소유로 하도록 못 박아 두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기술임치제도 발전연구회에서 업계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해 정부에 제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제도 활성화를 위한 방안을 논의해보자.
◇손승우= 현 제도의 문제는 상생법의 범위 자체가 수·위탁 관계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술임치제도는 모든 기업에 적용될 수 있는 제도인데, 굳이 표현하자면 법률의 한계다. 수·위탁 관계를 벗어난 업체에서는 제도를 이용하지 못하는 일도 있을 수 있다. 제도의 적용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 또 다른 문제점은 기술자료 임치 대상에 저작권이 빠져 있다는 점이다. 최초 법안에는 들어가 있었지만 마지막에 빠졌다. 마지막으로 기술이라는 것은 SW 단독이라기보다는 기술과 혼용돼 있는 때가 많다. 그런데 기술을 분리해 SW와 기술을 달리 임치하도록 돼 있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SW 임치제도를 운용하고 있는 컴퓨터프로그램위원회와 대중소기업협력재단이 서로 제도를 공유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이현=제도상 우려될 수 있는 문제점이 있다. 제도가 크게 확산되고 대기업들도 이용률이 높아지면 자칫하면 재단의 신뢰성과 관련된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재단은 정부가 관여한 비영리재단이라는 측면이 있지만, 기업 측에서 내 기술 자체가 유출될 수 없다는 인식 확산이 필요하다. 실제로 외국의 사기업들도 신뢰성 얻기에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에서도 신뢰성 제고 측면에서 임치제도의 안전성에 대한 인식 확산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업체에서도 꺼릴 수 있다.
◇윤도근=세계에서 국가가 법으로 정한만큼 가장 공신력 있는 제도라고 봐야 한다. 법률은 책임이 수반되므로 대외적으로는 국가가 책임을 지게 된다. 재단의 신뢰성 측면에서는 법률로 정해놓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
◇사회=제도 활성화를 위해서는 대기업 참여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들을 이끌어내기 위한 방안이 있는가.
◇손승우=SW 임치제도는 대기업이 많이 참여하고 있다. 다소 힘들겠지만, 기술임치제도를 활성화하려면 정부가 기업을 대상으로 발로 뛰어서 교육하고 홍보해야 한다. 지역별로 내려가서 컨설팅도 하고, 이들과 만나면서 기술임치제도를 홍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10년 뒤에도 제도 정착이 어렵다.
◇사회=임치에서 기술 검증 역할도 중요하다.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
◇조태용=기업이 확인을 원해 검증을 하게 되면 전문인력이 수반돼야 하는 부분이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기술검증 관련 연구소 등과 협력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윤도근=임치운영기관인 재단이 굳이 나설 필요는 없다. 오히려 재단에서는 공인된 검증 기관을 소개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우리나라에 시험분석기관이 있는데, 그 기관에서 할 수 없는 이상의 기술 검증은 어렵다. 단지 기업에서 목표하는 성능만 내면 된다. 모든 검증이라는 것은 성능 테스트로 가능할 것이다.
◇손승우=사례를 들겠다. 대기업에서 성능이 아니라 그 기술이 나오기까지 노하우를 적어 임치해달라는 사례도 봤다. 성능만 가지고는 무리다.
◇사회=일부 선진국에서는 임치대상이 기술뿐만 아니라 기술 이전도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기술거래소를 이용하면 기술이전에 따른 검증 문제는 해결되지 않겠는가.
◇조태용=기술이전에도 관심을 갖고는 있다. 현재는 제도 초창기인만큼 구체적인 논의는 아직 이르다. 기술거래소 같은 경우 에스크로팀이 있는데 아직 활성화지 않고 있다. 기술거래소에서 하고 있는 휴먼테크나 기술이전이 왜 안 되는지 검토해야 할 부분이다. 이를 접목해서 왜 활성화되지 않고 있는지 검증기관의 풀을 다양하게 구성할 예정이다.
◇윤도근=기술거래 시 제3자가 평가한다는 것이 굉장히 위험하다. 검증 임치가 아니라도 기술이 공개가 되고 돈만 된다면 관련 기업들이 알아서 사 간다. 기술평가는 거래기준을 제시해주는 게 쉽지 않다. 이 때문에 검증임치에서 평가임치로 넘어가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
◇사회=제도 활성화를 위해서 해외 사례를 벤치마킹해볼 만하다. 해외는 어떻게 해서 활성화됐는지 그 과정에서 문제점은 없었는지 이야기해달라.
◇손승우=민간 기업들이 숱한 시행착오를 거쳐 만들었다. 모든 프로세스가 비밀이라 외국 기업들이 함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해외 사례와 다르게 정부가 법을 만들어 제도를 도입했고, 활용 방법도 다르다. 얼마 전 제주도 포럼에 참석했던 존 레이 영국 NCC 총괄책임자는 기술임치제도가 한국에서 이렇게 다르게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놀라워했다.
◇이현=해외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과정에서 과거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조사해볼 필요가 있다. 기업 파산으로 인한 기술 교부 시 논란이 있었는지 살펴봐야 한다.
◇윤도근=사례 조사가 필요하다. 코트라 등을 이용해 사례를 수집하고, 처리 방안도 직접 들어야 한다. 결과만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조태용=일본은 임치제도가 활성화되지 않은 편이다. 활성화가 왜 안 되는지 역시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지난 제주도 포럼 당시 이스라엘의 사례가 우리와 비슷하다고 해서 초청하려고 했는데 잘 안 됐다. 어찌됐든 해외 사례는 계속적으로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고, 대처할 수 있도록 하겠다. 선진국의 수십년간 노하우는 배워야 한다.
◇사회=제도 활성화를 위해 기술임치제도 발전연구회에 대한 기대감을 말해달라.
◇윤도근=연구회의 핵심은 공부다. 그리고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입소문이다. 제도가 제대로 정착할 수 있도록 지방중기청 등 기업지원 현장 밑단까지 확산시켜야 한다. 그래서 연구회의 역할이 필요하다. 연구회 중심으로 브레인 스토밍 기회가 많아야 한다. 연구회를 지역발전연구회로 묶어서 지회 중심으로 계속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정부와 기업이 아닌 제3의 시각이 필요하다.
◇허병근=정부가 홍보를 적극적으로 한다면 중소기업이 많이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개발자 쪽에서도 기술을 탈취당하지 않고 기술이 독자적으로 보호될 수 있다고 하면 흔쾌히 제도 활용에 나설 것이다.
◇조태용=앞으로 지역발전연구회에 기관별 기술이전조직(TLO)을 비롯해 기업 측 인사를 많이 참여시킬 계획이다. 3개 권역별 실무위원회 형식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이현=실무에 종사하는 변호사 업계에도 많이 알려질 수 있도록 홍보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기업담당 변호사에게도 많이 알려지도록 정부가 나서달라. 또 사기업 간 계약거래서에 임치제도 활용을 권장하도록 제도를 보완하는 것도 필요하다.
◇조태용=앞으로 정부가 사업이 안정화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예산을 지원해줬으면 한다. 연구회에서도 많이 도와줘 제도가 조기에 안정화되기 바란다.
정리=신선미기자 sm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