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새로운 과학기술이 등장하면 새로운 무기가 만들어졌고, 새로운 무기가 만들어지면 새로운 전술교리가 개발되고 새로운 군 구조가 등장해 군사변혁이 이루어진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루스벨트의 과학고문으로서 원폭개발을 선도했던 바네바 부시는 과학기술의 위력을 누구보다도 더 절실하게 실감했다. 그렇게 끈질기게 저항하던 일본이 원폭 두 발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무조건 항복’했기 때문이다.
그가 1954년에 작성해 미국정부에 건의한 ‘과학 그 끝없는 프런티어’는 전후에 미국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유명한 정책 보고서다.
과학기술이 무기가 돼 전쟁에서 이겼듯이, 이번에는 과학기술이 산업과 연결되면 경제를 일으킨다는 주장이다. 그의 주장대로 오늘날 미국의 번영은 과학기술이 선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군사적으로 과학기술이 만들어낸 새로운 무기가 전장에 나타나서 엄청난 충격을 주었던 사례를 우리는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73년 4차 중동전에서 이집트군의 기습을 받은 이스라엘군이 불과 30분 만에 80여대의 전차가 손실되고 물러설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집트가 소련에서 도입한 대전차 유도탄 때문이었다. 포클랜드전에서 영국의 전함이 순식간에 격침당해버린 것도 아르헨티나 공군이 프랑스에서 사들인 엑소셋 미사일의 위력이었다.
걸프전과 코소보전에서 미국의 스텔스기들이 적진을 마음대로 누비면서 상대방의 방공망을 무력화시키는 데도 기술의 후진국의 군대는 대응할 수단이 없었다. 그러나 새로운 무기 몇 가지가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유일한 조건은 아니다.
같은 미군이 싸운 전쟁이지만 1970년의 월남전과 1990년대의 걸프전은 극명하게 대비된다. 과학 무기차원에서 본다면 두 전쟁에서 미국군은 공히 상대방이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앞서 있었다. 물론 전쟁의 성격이 판이했던 것도 하나의 원인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무리 우수한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해도 전술과 연계되지 않으면 전승을 기할 수 없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스케일스 장군의 말처럼 미군은 10년 동안 그렇게 월남의 정글에서 헤매고 다녔으며 그 미군이 70년도 후반부터 변혁을 단행했다.
당시로서는 최고 수준의 무기체계를 선택해 장비한 것도 괄목할 만한 변혁이었지만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변혁은 과학기술과 전술을 연계해 미래전을 준비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대표적인 변혁이 과학적 방법을 이용한 훈련이다. 미 육군의 NTC, 공군의 ACMI가 모두 과학기술과 전술을 연계한 훈련방법이었다. 이 변혁을 거친 미군이 걸프전에 참전했다. 불과 100시간의 전투로 후세인의 정예부대를 격파하는 장면은 하나의 드라마였다.
이 전쟁에 참전했던 미군의 전차병들은 실전이 훈련보다 더 쉬웠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후 과학기술환경이 다시 중대한 변화를 맞이했다. 정보화 시대가 사회전반에 걸쳐 중대한 변화를 이끌어가고 있으며 이 변화가 전장의 변화를 예고한다.
그 방향은 네트워크 중심 전쟁(NCW)이 된다는 것이 공통된 견해다. NCW의 내용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는 아직은 미지수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과학기술과 전술을 연계해 변혁을 이끌어간 군대는 승리할 것이고, 기술의 변화를 전술적으로 수용하지 못한 군대는 실패하게 된다는 것이다.
새로운 무기가 만들어진 연후에 그 무기를 이용해 전술을 구상하던 시대도 지나갔다. 이제 과학기술의 발전 방향을 보면서 전술을 구상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과학자들이 전술 현장에 참여해 전술적 요구를 깊이 이해하고, 방향을 찾아 과학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과학기술과 전술의 융합이 미래전의 승패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