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아무리 말이라고 해도 수익 배분까지 약속하길래 인력 투입해서 고생한 것 아닙니까.”
B. “그래도 서면으로 하지 않았으면 계약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가 없습니다. 증거가 없어요.”
A. “아니,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세요. ‘갑’ 요청으로 실제로 일을 했는데, 뭘 더 증명합니까.”
A는 중소 소프트웨어(SW)업체 사장, B는 변호사다. 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IT서비스기업과 함께 밤을 새워가며 제안서를 만들었던 A는 최근 억울한 일을 겪었다. 막상 사업을 수주하고 나니 계약은 전혀 다른 기업과 체결됐다. A는 법이 자신을 도울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변호사를 만난 것이다. 그러나 결국 A는 ‘세상을 아는 데 수업료가 너무 비쌌다’며 한숨만 내쉬었다.
A의 사연은 이랬다. IT서비스기업이 공공기관의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 제안서 작성에 함께할 것을 요청한 것이다. IT서비스기업들은 요소기술이 부족하다 보니 제안서를 작성할 때 대개 이런 형태로 SW기업들의 도움을 받는다. 그러나 수익은 결국 다른 기업이 맛보게 됐다.
‘재주는 곰이 구르고 돈은 사람이 번다’는 속담이 딱 A의 상황이었다. 억울했던 A는 기자 앞이라는 사실도 잊은 듯 변호사에게 하소연을 했다. 사업 경험이 부족한 탓일까, 너무 믿은 탓일까. 이런 일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A는 앞으로는 e메일이라도 받아 놓아야겠다는 말을 하며 교훈을 얻은 것에서나마 위안을 삼았다.
대표적인 지식산업이라는 SW산업의 현실은 이처럼 어지럽기만 하다. 정부가 이것저것 대책을 내놓아도 편법이 난무한다. 중소기업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대책을 세우면 또 다른 부작용이 발생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그릇된 상황을 바로잡으려면 결국 첫 단추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점에 업계는 공감한다. 대·중소기업 상생보다 그 이전에 발주자의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는 점이다. 발주 단계의 티끌이 중소기업에 도착할 때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때문이다.
문보경기자<정보미디어부> okmu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