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너시스템즈 강용구 사장의 주변에 ‘걱정어린 시선’이 많아졌다.
세계 어느 기업도 시도하지 못한 차세대 통신망(Next Generation Network) 플랫폼 개발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강 사장의 지난 세월을 아는 사람들은 ‘염려 반, 기대 반’으로 그의 새로운 시도를 지켜볼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잘 안다.
몇 년전 제너시스템즈를 창업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 하지 못할 것이란 ‘벽’을 넘다
그는 언제 보아도 그저 푸근한 옆집 아저씨 같은 인상이다. 누굴 만나도 격식이 없다. 소탈하고 얘기를 풀어내는 솜씨가 그냥 구수한 동네 친구 같다. 그렇게 편안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연출할 줄 아는 재주를 가졌다. 그렇다고 그가 예의 없거나 시장을 보는 예지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주변엔 친구 같은 지인이 유난히 많다.
그런 그가 2000년 2월, 10년을 넘게 다녔던 데이콤 연구소를 나와 소프트스위치(SSW)를 만들겠다며 창업을 선언했을 때 주변에서는 기대보다는 걱정의 소리를 많이 했다.
당시만 해도 차세대통신망에 대한 이해조차 미약했던 시절이다.
이런 시절에 NGN의 핵심 장비인 소프트스위치를 개발하겠다며 창업을 했으니, 걱정어린 시선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소프트스위치는 서킷망과 패킷망의 가교 역할을 하는 미디어 게이트웨이들의 호 처리를 제어하는 소프트웨어 중심의 지능형 교환 장비다. 즉, 기존 음성중심의 일반전화가 데이터중심의 IP망으로 통신망이 진화하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장비다. 하드웨어 기반 교환기를 소프트웨어로 구현했다고 단순 이해해도 무방하다.
어쨌든 당시에는 국내 통신대기업은 물론 글로벌 기업조차 상용화 실적이 거의 없던 새로운 시도였다.
개발 중에나, 개발한 뒤에도 벤처기업이 사업화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아이템이라는 지적이 뒤따랐다. 결국 본격적인 매출이 만들어지기 전에 회사에 투자했던 일부 벤처캐피털이 자금을 회수해 가기도 했다.
하지만 강 사장은 한 눈을 팔지 않았다. 뚝심으로 버텼다. 결국 제너시스템즈는 소프트스위치를 개발, 다국적 통신장비회사를 모두 물리치고 국내 모든 통신사업자에 소프트스위치를 공급하는 쾌거를 일궈냈다.
# 숨 돌리지 말고 가자
지난 3월에는 회사를 코스닥시장에 상장시켰다. 9년의 시간을 지나, 한 단계 올라선 것이다.
그런 그에게 두 번째 걱정어린 시선들이 꽂히고 있다.
강 사장이 이번에는 차세대 네트워크(NGN)의 플랫폼 개발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2006년 176명, 2007년 210명에 불과하던 직원도 280명으로 늘렸다. 남들은 구조조정이다 뭐다 정신없는 시점이지만, 개발에 대한 강 사장의 의지는 확고하다.
늘어난 직원의 대부분은 NGN의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 만든 소프트웨어연구센터의 연구개발(R&D) 인력이다.
소프트웨어연구센터는 차세대 기술 개발을 위해 새로 만들어진 연구 조직이다. 현재의 주사업에 대한 유지보수, 시장 대응 등의 역할을 맡고 있는 기존 기술연구소와 구분, 연구조직을 이원화한 것이다.
베트남과 말레이시아에 지사도 만들었다. 지난 9월에는 중국 대련에 시험센터도 문을 열었다. 본사 인력은 1명씩만 파견하고, 나머지는 30여명은 현지에서 채용했다. 그동안 해외 진출 과정에서 겪었던 시행 착오를 개선, 현지화를 위한 전략의 일환이다.
특히 베트남 같은 경우는 현재 개발중인 NGN 플랫폼의 글로벌 전략을 위한 초기 테스트 베드의 역할도 수행하게 된다.
강 사장은 “앞으로 2년은 뒷짐만 쥐고 있어도 먹고사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하지만, 그 다음은….
여기에 대한 고민이 다음 고지를 향해 강 사장을 몰아 붙이고 있다.
# 항상 꿈을 꾸는…그러나, 누구보다 현실적인 ‘CEO’
강 사장은 항상 남들보다 먼저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새로운 것에 대한 꿈이 있기 때문이다.
2000년 창업 당시에도 향후 모든 통신서비스는 인터넷(패킷) 기반으로 통합될 것이라는 점과 통신사업자들은 갈수록 새로운 서비스를 원할 것이라는 2가지 통신산업의 흐름을 읽고 창업에 뛰어들었다.
판을 크게 읽었기 때문에 꿈도 컸다. 그래서 선택한 분야가 소프트스위치였다.
이번에는 모든 통신 소프트웨어의 기반이 되는 플랫폼을 개발 중이다.
현재 제너시스템즈에서 개발 중인 것은 모든 통신시스템의 기반이 되는 말 그대로의 ‘플랫폼’이다. PC의 운영체제(OS)라고 이해하면 된다.
하지만, 이 같은 제너시스템즈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뒷받침이 없으면 안된다.
이익 창출이 없는 기업은 존재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이미 향후 몇 년간의 먹거리에 대한 로드맵은 완성된 상태다.
번호 이동성 등으로 인해 시장 자체가 커지고 있기 때문에 내년 인터넷전화(VoIP) 사업자들의 대규모 시스템 증설을 예상하고 있다.
공공 시장 전망도 밝다. 이미 행정안전부에서 추진했던 시범사업에 시스템을 공급, 유리한 기반을 마련했다.
내년 상반기에는 관련 기업들과의 협력을 통해 직접 개발한 솔루션을 탑재한 VoIP 단말도 선보일 예정이다. 단말 제품군을 확보하면 고객들이 필요로하는 VoIP 모든 제품 라인업을 완성하는 셈이다. 매출과 수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차세대를 위한 야심찬 투자를 진행할 수 있는 이유도 이 같은 준비가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다.
# 글로벌 SW기업 꿈꾼다
강 사장은 ‘기업의 가치는 영속성에 있으며, 따라서 기업의 최종 목표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현재 설정하고 있는 다음의 목표는 ‘제너시스템즈’라는 브랜드로 전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글로벌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도약하는 것이다.
이 목표를 위해 “사람이 자산이되 개인에 의존하지 않고, 경험이 무기이되 기억에 의존하지 않고, 제품이 핵심이되 골목대장으로 머무르지 않는 길을 가야 한다”고 본인과 직원들에게 항상 강조하고 있다.
강 사장은 이 같은 목표를 위해 지난해부터 ‘제너 2.0’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에는 제너시스템즈가 추구하는 비전 중 하나인 ‘내 자녀를 입사시키고 싶은 회사를 만들자’는 소망이 담겨 있다.
현재의 시도와 노력은 이를 실현하기 위해 ‘계속 쌓아나갈 수 있는 탄탄한 기반(시스템)’을 만드는 과정의 하나다.
여기서 말하는 시스템은 작게는 NGN 플랫폼을, 크게는 회사 자체를 의미한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
◆강용구는
1964년생이다. 전라북도 완주가 고향이다. 1986년 연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공군 장교로 병역을 마쳤다. 1990년 대우통신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1993년 한국전자통신연구소(ETRI)으로 옮겨 2년여간 근무했다. 1995년 데이콤에 입사해 연구소에서 데이콤과 하나로텔레콤의 지능망 개발 및 적용을 총괄했다. 마침내 2000년 2월 제너시스템즈를 창업했다. 국내 다른 경쟁사와 외산을 물리치고 국내 소프트스위치 시장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했다. 코스닥에도 상장시켰다.
공식 프로필이 재밌다. ‘통신서비스 산업의 기술적 진화에 대한 비전과 사업 모델에 대한 현실적인 통찰력을 제너시스템즈에서 실행에 옮기고 있는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적극적인 활동가’다. 그렇게 살고 싶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하고 행동지침이기도 하다.
그에게도 자랑거리가 있다. 바로 아내와 두 아들이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는 아내는 그가 어려울 때나 슬플 때나 든든한 지원군이자 후원자였다. 항상 미안하고 고맙지만 표현엔 젬병인 그다. 아직도 그는 전세집에 산다. 회사는 부자인데 그는 아직 집 살 돈이 없는 모양이다.
그런 강 사장도 요즘 아프라카 마사이족들의 걸음 걸이에서 유래했다는 ‘운동화’에 푹 빠져 있다. 몇 개월전부터 신고 다닌 신발의 효과를 봤는데, 몰라보게 날씬해졌다. 주변에도 적극적으로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