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CD 장비 업체인 A사는 최근 대만 모 패널 업체로부터 올 4분기 장비 입고분을 6개월 가량 연기해달라고 요청받았다. 올초 맺은 장비 공급 계약에 따르면 4분기 입고 물량만 100억원대를 넘는다. 일방적인 지연 요청에 난색을 표하자 결국 내년 상반기까지 세 차례에 걸쳐 나눠 입고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또 다른 대만 LCD 패널 업체들로부터도 적게는 두달에서 길게는 6개월까지 발주 장비 입고를 늦춰 달라는 요청을 잇따라 받았다. A사는 당장 올해 매출을 염려해야 할 판이다.
최근 전세계 LCD 패널 시황 악화의 직격탄을 맞은 대만 패널 업체들이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하면서 국내 장비·부품 업체들에게 역풍이 불고 있다. 대만 AUO·CMO·CPT·한스타 등이 대형 LCD 라인의 신증설 투자에 경쟁적으로 나서면서 지난해말부터 올초까지 국내 장비 업체들에 적지 않은 물량을 발주했지만 입고 일정을 미루고 있다. 대만 패널 업체들의 경우 현재 보유한 LCD 라인 가동율도 많아야 60%를 겨우 맞추는 상황에서 신증설 발주 물량을 늦출 수 밖에 없는 셈이다.
대만 수출 비중이 큰 또 다른 국내 장비 업체 B사는 내년 장비 입고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걱정했다. 상반기 수주 물량이 대부분 8세대용 장비로, 원래 일정은 내년초 입고 예정이었지만 조금씩 늦춰지는 분위기다. B사 관계자는 “아직 공식적으로 입고 일정을 연기하겠다는 통보는 없었다”면서 “하지만 내년초부터 들어갈 장비는 순차적으로 몇달씩 지연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고 우려했다. 비교적 대만 수출 비중이 적은 C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C사 사장은 “장비 개발을 끝내놓고 포장지에 싸여 수출 대기중인 물량만 수십억원 규모로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통상 대만 LCD 패널 업체들의 경우 장비 공급대금의 70% 가량을 입고 시점에 지급하고, 장비 설치가 완료되면 나머지 잔금을 치른다. 장비 업체들로선 입고가 지연되면 애써 만든 장비를 매출은 고사하고 ‘재고’로 떠안게 되는 셈이다.
장비와 사정은 다르지만 수출 비중이 큰 LCD 부품 업체들도 악영향을 받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대만 LCD 패널 업체들의 가동율(출하량)이 바닥으로 추락하면서 현지 수출 물량이 급감한 탓이다. LCD 백라이트유닛(BLU)용 핵심 부품 업체인 D사는 지난 10월까지만 해도 전체 매출의 절반 가량을 대만쪽에서 벌어들였지만 11월부터는 수출 규모가 반토막났다. 근래 고환율의 영향을 감안하면 대만 현지 부품 업체보다 수혜를 입을 법하지만 대만 패널 업체들의 가동율이 워낙 떨어졌기 때문이다. D사 관계자는 “내년 상반기까지도 대만 수출 물량이 회복되기 힘들 것으로 보고 경영 계획을 재검토하는 중”이라며 “수출 기업으로서는 여러가지 어려움이 가중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