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가 ‘벼랑 위의 포뇨’를 준비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인 지난 2004년이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 개봉 당일 지브리 스태프 전원과 함께 세토내해의 해변 마을로 여행을 떠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그곳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한 소년의 모습을 봤다. ‘성난 파도를 바라보고 있는 소년의 표정’에서 ‘벼랑 위의 포뇨’의 이야기는 어렴풋이 시작된다. 그러나 구체적인 것은 없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끝난 이후 미야자키 감독은 일본의 국민 소설가로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 전집을 읽으며 차기작(포뇨)을 준비해 나간다. 나쓰메 소세키의 전기 3부작 중 세 번째 작품에 해당하는 ‘문’을 접한 순간 미야자키는 머릿속에 스치는 섬광을 만난다. 소설처럼 벼랑 위에 사는 소년(소스케)을 그려보면 어떨까. 만약 소년이 성난 파도를 겪는다면. 그리고 그가 바다에서 겪는 모험이라면. 이런 대략적인 아우트라인을 가지고 있던 미야자키는 바그너의 오페라 ‘발키리’를 들으며 등장 인물들을 구체화해 나간다. 애니메이션 벼랑 위의 포뇨는 이렇게 태어났다.
지난 7월 일본에서 개봉해 41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불러들인 벼랑 위의 포뇨(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지브리스튜디오 제작)가 오는 18일 한국에서 개봉된다. 일본과의 시차로 인터넷상에 이미 불법 파일이 난무하지만 어쨌든 공식 개봉은 이번이 처음이다. 수입사 대원미디어는 불법 다운로드를 엄벌하겠다고 공표했지만 미야자키 팬덤 앞에서는 역부족인 것처럼 보인다. 한국에서는 유독 애니메이션이 춥고 추운 싸움을 벌이고 있지만 미야자키만큼은 예외다. 전작인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애니메이션으로는 이례적으로 300만명의 관객을 모았고 2002년에 소개된 센과 치히로의 모험은 200만명을 극장으로 불러 들이는 기염을 토했다. 그래서 영화계에서는 벼랑 위의 포뇨에 대한 기대감이 증폭되고 있다. 어느 정도의 관객을 끌어올 수 있을지 그리고 미야자키 불패 신화를 이어갈지.
지난 2일 국내 언론에 공개된 벼랑 위의 포뇨는 전작의 인기를 이어갈 만한 작품이었다. 한마디로 말해 거장의 필치가 물씬 풍기는 영화라고나 할까. 사람들은 꿈을 꾸지만 그(미야자키 하야오)는 꿈을 만들어낸다는 세간의 평가가 틀리지 않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호기심 많은 물고기 소녀 포뇨는 따분한 바다 생활에 싫증을 느끼고 급기야 아빠 몰래 육지로 탈출을 감행한다. 해파리를 타고 육지로 올라온 포뇨는 유리병에 갇히는 위기에 빠진다. 때마침 해변에 놀러온 소년 소스케의 도움으로 구출되는 포뇨. 이후 소스케와 포뇨는 육지 생활을 만끽하지만 포뇨의 아버지 후지모토는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벼랑 위의 포뇨에서 가장 묘사가 뛰어난 부분은 ‘포뇨와 소스케의 모험’을 그린 중반 이후다. 어머니를 찾기 위해 장난감 배를 타고 나간 이 둘은 배에서 많은 우여곡절을 겪는다. 풍랑을 만나기도 하고 방향을 잃어 마을 사람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자아를 찾아간다는 오디세이 일정이 영화 주제라면 제대로라는 생각이 든다. 각종 풍경과 물고기가 등장하는 이 파트야말로 미야자키 월드의 상상력이 집대성된 부분이라는 평도 어색하지 않다.
그러나 분명 부족한 면도 있었다. 미야자키 팬들에게 미안한 이야기지만 깊어진 연륜만큼이나 난해한 주제는 새로운 관객을 맞기에 버거워 보였다. 17만장의 셀을 사용했다는 장면 장면은 ‘연필로 영화를 만든다’는 애칭답게 매우 부드러웠지만 애니 전면을 관통하는 주제는 우리의 일반 정서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환경 보호, 인간성 훼손 등의 거대 담론은 영화에 등장하는 고대 데본기 물고기만큼이나 어색하다. 또 소스케를 비롯한 주인공들의 지나친 낙관주의도 약간 거슬린다. 거장에게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 만화라지만 합의된 상상만이 관객 감성을 자극한다고 말하면 혼날까.
한정훈기자 existe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