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관은 살아있다](8)호주 시드니 파워하우스

 파워하우스는 100여년의 세월을 지나오는 동안 식민지 획득물 전시관에서 과학융합 전시관으로 컨셉트와 외형이 바뀌었다.
파워하우스는 100여년의 세월을 지나오는 동안 식민지 획득물 전시관에서 과학융합 전시관으로 컨셉트와 외형이 바뀌었다.

 호주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불리는 영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니콜 키드먼(새라 애슐리 역)은 소를 수출해 돈을 버는 여장부로 나온다. 광활한 목초지를 넘어 사막을 지나 항구까지 소를 이끌고 가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세계 2차 세계대전이 배경인 이 영화처럼 지금의 호주도 하늘을 그대로 품은 태평양이 감싸고 있고 국토 중앙에 자리 잡은 사막과 바다를 따라 도시들이 자연스레 어우러져 있으며 자연을 수출한다. 하지만, 호주의 자연환경만 유려한 것은 아니다. 100년 넘게 과학을 기반으로 사회과학·역사·예술 등이 한데 어우러진 번듯한 융합과학박물관이 있는 곳 또한 호주다. 호주 시드니 비즈니스센터와 아름다운 부둣가인 ‘달링 하버’ 사이에 위치한 ‘파워하우스’가 그 주인공.

◇전력발전소가 박물관으로=호텔과 쇼핑몰, 해군 박물관, 아이맥스 영화관, 아쿠아리움, 해변가를 따라 있는 노천 레스토랑이 즐비한 달링 하버와 금융 및 IT업체가 빼곡히 들어서 있는 비즈니스 구역. 이곳에도 과학 시드니는 숨어 있다. 바로 파워하우스다. 파워하우스는 100여년 전 문을 닫은 ‘울티모 전력 발전소’를 재건축해 만든 전시관으로 유명하다.

파워하우스를 방문한 첫 느낌은 ‘선택과 집중’이랄까. 과학에 집중하면서도 전시관 곳곳에 배어 있는 문화와 사회상들이 인상적이다. 왜 융합박물관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다. 파워하우스가 융합박물관으로 탈바꿈하기까지는 그만한 역사적 배경이 있다.

 파워하우스의 시작은 전혀 ‘과학’스럽지 않았다. 식민지 유물을 모은 전시관이 모태다. 이후 국제발명품전시관, 테크놀로지 전시관을 거쳐 지난 1945년 지금의 융합과학박물관과 같은 성격을 갖게 됐다. 당시 융합과학 전시는 모두가 놀랄 만한 주제였다. 파워하우스는 융합과학으로 컨셉트를 전환하면서 기존 전시물, 예를 들면 18세기 옷을 전시한다고 해도, 그 옷에 패브릭이나 혹은 옷을 제작할때 필요한 도구들에 깃든 과학적 이론을 테마로 엮어냈다.

어떻게 보면 종합박물관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선택과 집중’을 통해 과학을 기반으로 한 사회·문화·예술박물관의 테마를 지키고 있다. 과학에 집중하되 호주의 역사와 생활상, 디자인 속에 숨어 있는 과학 등을 보여주는 것이 파워하우스 전시물의 기본 원칙이다. 파워하우스가 100년 넘게 모아온 3만점 이상의 전시물을 효율적으로 배치했으며 과학이라는 기본 테마에 어울리지 않는 것은 별도로 전시하거나 다른 박물관에 기부하는 등의 방법을 취했다.

◇과학, 예술,사회, 호주를 한데 섞으면=과학융합이라는 특별한 개념만큼 전시관 이름에도 차별성을 뒀다. 층간 구분을 해놓았지만 파워하우스에는 층별 구분보다는 각 전시관의 테마가 더욱 중요하다. 16개의 테마는 △느껴라! 시간을 넘는 디자인 △조(Zoe)의 집 △우주-이 세계를 넘어 △호기심 많은 경제학자:윌리엄 스탠리 즈본스 △더 멀리, 빠르게, 높게-소리와 빛의 경험 △볼턴과 와트의 증기기관 △화학적 끌림 △핵 문제들 △사이버세계 △에코로직: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기 △경험하기 △킹스 시네마:사진으로 가다 △음악연주:만들고 연주하고 △증기 혁명 △호주 전시관 등으로 과학과 역사·문화가 다양하게 혼재된 특별한 전시들이 많다.

 케이트 대니얼 파워하우스 교육 프로그램 기획팀장은 “초기에 16개의 상설전시를 구성할 때 한 가지 테마를 정하기까지 3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 기획회의를 하고 구성하는 등 공을 많이 들였다”며 “각 상설전시는 정부의 지원이 기본이지만 첨단 과학분야는 호주 내 IT 업체나 로봇 업체 등에서 후원을 받아 설치한 것들도 많다”고 설명했다. 특히 1년에 6회 정도 기획된 특별 전시는 시간과 노력이 상설전시보다 많이 든다. 한 테마당 짧게는 6개월 길게는 5년씩 미리 준비하는 편이다. 12월 전시물로 기획된 ‘스타워즈:과학과 상상력이 만날 때’도 준비하는 데만 2년이 넘게 걸렸다. 직접 미국 할리우드에서 스타워즈에 나온 로봇을 공수해오는가 하면 시드니 공과대학의 조언을 받아 전시물의 테마를 정하기도 했다.

◇적재적소, 자원봉사자=3개 층에 20여개 가까운 세부 주제가 있는 제법 큰 규모의 과학박물관이다 보니 자원봉사자도 많다. 퇴직이 빠른 호주에서 자원봉사는 이미 일상화된 일. 자원봉사자 중에는 경험을 쌓고 싶은 대학생도 있지만 대부분이 은퇴자들이다. 파워하우스에서도 50명이 넘는 자원봉사자가 매일 관람객을 맞고 있다. 자원봉사자 교육도 확실하다. 100쪽이 넘는 각 섹션 및 전시관 소개자료와 기구 다루는 법, 관람객에게 설명하는 법 등 박물관의 A부터 Z까지 모든 것이 자세히 나와 있다. 이 자료로 3일간 수업을 한 뒤 3개월간 실전에 투입해 자원봉사 연수를 받는다. 연수의 기본은 과학관과 더욱 친해질 수 있도록 먼저 도움을 주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과해야 비로소 파워하우스의 정식 자원봉사자가 된다. 은퇴 뒤 20년 넘게 자원봉사를 한 밥 디고타디씨(68)는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집을 지키고 있는 것보다 자원봉사 등을 통해서 사회활동을 하는 게 더 즐겁다”며 “계속 전시관을 돌아다녀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시드니(호주)=이성현기자 argos@etnews.co.kr

◆‘파워하우스(Powerhouse Museum)’=과학+디자인

‘파워하우스-사이언스+디자인’의 본래 이름은 ‘응용미술과 과학박물관(The Museum of Applied Arts and Sciences)’이었다. 정부에서 지원하고 있는 공공박물관의 형태로 129년 전인 1879년에 만들어졌다. 개관 초기에는 세계 각국의 발명품을 전시해 놓는 ‘진열관’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1882년에 큰 불이 난 뒤 10년 넘게 시드니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다 1899년, 오래된 전력발전소에 자리 잡은 이후 과학을 기초로 한 역사와 사회, 디자인 등이 융합된 융합과학전시관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때 지금과 같은 외형을 갖추게 됐다.

파워하우스는 전력발전소 입구만 제외하고 건물 외형은 그대로 쓰고 있다. 그래서인지 여느 박물관과 달리 건물 천장이 굉장히 높고 기둥도 이곳저곳에 세워져 있다. 고치는 데만 8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융합과학’이라는 내부 테마를 정한 것은 지난 1945년부터. 100년이라는 한 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3만점 이상의 전시물을 모으면서 비행기, 기차, 증기기관부터 패션과 호주 역사 및 문화, 생활양식 등 혼재돼 있던 것을 과학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테마로 정리해냈다. 특히, ‘시드니 천문대’와 캐슬힐 지역에 운영 중인 ‘파워하우스 센터’는 파워하우스의 한 부분으로 운영하며 우주와 문화 전시의 전문성을 보다 강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