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오른 기업구조조정](상)신속함이 핵심이다

 1998년 6월, 당시 이헌재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이 퇴출 은행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1998년 6월, 당시 이헌재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이 퇴출 은행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많은 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10년전 국제통화기금(IMF)관리시대가 돌아오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1997년 건설업체인 우성과 건영으로 시작된 기업의 연쇄 부도사태는 국가를 충격에 빠뜨렸다. 결국 IMF에 손을 벌려야 했고 부실기업은 해외에 매각되거나 빅딜 등 혹독한 구조조정이 이뤄졌다.

10년 후 미국발 금융위기는 또 한번 대규모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자동차 빅3에 대한 구조조정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는 등 전 세계는 구조조정의 찬바람이 불고 있다. 우리나라는 10년전과는 상황이 다르다. 무분별한 외화차입과 무려 400%를 넘어섰던 기업의 부채비율 등 내부적인 원인이 컸던 10년 전과 달리 현재의 상황은 외부적인 원인이 크다는 다른 점이 있다.

그러나 내부사정은 양호하지만 선진국의 경기침체는 10년전보다 더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 한국 경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70%를 차지하는 점을 감안할 때 선진국의 소비위축은 큰 충격이 될 수 밖에 없다. 대부분의 경제연구소들은 내년 수출 증가율이 3∼4%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만약 성장률이 2%대에 그치면 연간 수출증가율은 마이너스로 돌아설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오문석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지금까지 성장기여도 측면에서 수출 비중이 컸기 때문에 수출증가율이 마이너스를 보인다는 것의 의미는 상당히 크다”며 “내수가 여전히 회복되지 않는 상황에서 경제성장에 미치는 타격이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성장률 하락은 소비위축 등과 맞물려 기업들이 경영난에 빠지게 될 것이고 자연스럽게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부실부문에 대한 과감한 구조조정에 나설 것을 주문하고 있다.

정부도 기업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현재는 주로 건설 부문 기업이 부실하지만 향후 조선·전기전자·자동차 부문으로 부실이 확산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직접 나서기 보다는 금융권에 맡기겠다며 소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구조조정속도에 대한 온도차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9일 기업구조조정과 관련해 “외환위기때는 위기가 일시적으로 덮쳐 정부 주도의 일괄 조정이 필요했지만 현재는 기업 부실이 서서히 가시화하는 상황. 민간주도의 기존 체계를 활용하는 것이 낫다”며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은행권도 구조조정에 대해 미지근하기는 마찬가지다. 은행들은 기업구조조정을 위한 조직개편을 속속 진행중이지만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은 채 시늉만 하고 있다. 상태가 양호한 기업에 대한 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적극적으로 부실기업을 솎아내겠다는 의지는 강하지 않다.

그러나 이같은 구조조정의 지연은 부실기업의 덤핑 공세 등 출혈경쟁을 유발해 정상기업까지 부실화하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 결국 시스템 위기를 최소화하려면 선제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과거 외환위기시 기아자동차에 대한 처리가 지연되면서 사태를 악화시켰던 전철을 되밟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속한 ‘옥석 가리기’를 통해 살릴 기업과 퇴출할 기업을 빠르게 구분하고 자금지원 및 정리가 이뤄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