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트와일라잇(twilight)’은 뉴욕타임스, 아마존 닷컴을 휩쓸며 판타지 소설의 새로운 흥행 강자로 떠오른 트와일라잇 시리즈 중 첫 번째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뱀파이어를 그린 소설 트와일라잇은 출판계에서는 ‘판타지계의 이단자’로 불린다. 지난 2005년 1부 트와일라잇을 시작으로 2부 뉴문, 3부 이클립스, 그리고 2008년 4부 브레이킹 던까지 이어진 이 소설은 출간되자마자 돌풍을 일으키며 원작자인 스테파니 메이어를 조앤 K 롤링과 같은 반열에 올려 놓는다. 전 세계적으로 판매 부수만 1700만권이 넘었다.
인간 속에서 실체를 숨기고 살아온 영원불멸의 뱀파이어와 그를 만나 사랑에 빠진 소녀의 이야기가 담긴 이 소설은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모든 이가 공감할 만한 로맨스와 절대미에 대한 유혹, 강한 초능력을 향한 판타지까지 결합돼 전 미국을 발칵 뒤집을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불러모았다.
흥행 소설이 영화화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2006년 이후 2년간 트와일라잇의 영상화 작업이 진행됐다. 이렇게 만들어진 영화 트와일라잇(캐서린 하드웍 감독, 로버트 패틴슨, 크리스틴 스튜어트 주연)은 강한 무게감만큼이나 초반 출발도 좋았다. 성공이 타진된 곳은 당연히 본고장인 미국. 소설의 모든 것이 궁금했던 트와일라잇 추종자 이른바 ‘트와일라이터(twilighter)’들은 개봉 첫 주(11월 21일)부터 극장에 몰려들었다.
사실 이런 흥행은 업계의 예측을 뒤집은 것이었다. 뱀파이어 영화의 초반 인기몰이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언론조차도 ‘놀랍다’는 표현을 쓸 만큼 경이로운 흥행돌풍이었다. 영화는 개봉 전 예매에서 이미 2000번이 넘는 매진을 이루며 여름 최고의 흥행작 ‘다크나이트’ 이후 최고의 예매율을 기록했고 미 전역 3419개 극장에서 개봉된 첫날에 총 3590만달러 이상의 수입을 거둬들였다. 이 수입을 시작으로 첫 주말 사흘 동안 트와일라잇은 시리즈 최고 첫 주말 수입을 올린 ‘007 퀀텀 오브 솔러스’를 가볍게 누르고 약 7000만달러라는 압도적인 수입으로 전미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소설의 인기를 감안하더라도 엄청난 흥행 광풍이었다. 성공의 이면에는 뛰어난 영화의 완성도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 트와일라잇은 소설과는 다른 맛을 느끼게 하는 수작이다. 영화는 방대한 소설을 정리하는 수준에서 출발하지만 소설의 재미에다 로맨스를 장착시켰다는 평가다. 극적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새로운 느낌의 긴장에는 비할 바 못 된다.
애리조나에서 안락한 삶을 누리던 17세 소녀. 엄마의 재혼으로 아빠가 살고 있는 포크스로 이사하게 된다. 햇볕을 좋아하는 소녀에게 1년 내내 흐리고 축축한 날씨의 도시에서 산다는 것은 달갑지 않은 일. 그런데 바로 그곳에서 에드워드 컬렌(로버트 패틴슨)을 만난다. 그는 “나와 친해지는 건 위험하다”면서도 소녀에게 끊임없이 접근해 온다.
‘트와일라잇’이 색다른 이유는 다른 작품과의 차별성 때문이다. 흔히 판타지라고 하면 떠올리는 대중적인 작품은 아마 해리포터 시리즈와 반지의 제왕 같은 영화일 것이다. 그만큼 판타지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는 다른 시공을 초월한 공간이나 세트, CG로 가득찬 장르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트와일라잇은 이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판타지 영화가 주인공의 성장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트와일라잇은 뱀파이어라는 판타지 소재에 고전 로맨스 소설의 공식을 덧씌운다. 이 소재를 가속화하는 것은 시대 배경이다. 영화는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배경으로 삼아 매우 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판타지지만 판타지 느낌이 나지 않는다. 자신의 본능을 억제하며 인간과의 사랑을 나누는 뱀파이어의 모습은 아슬아슬한 로맨스로, 또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뱀파이어와 뱀파이어 간 벌어지는 죽음의 혈투는 빠르고 강렬한 액션으로 화면상에 뿌려진다. 관객이여! 숨을 죽여라.
한정훈기자 existe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