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웅 연출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소규모 극장(산울림 극장)이라는 단점을 딛고 연일 관객 몰이에 성공하고 있다.
이 작품은 한국과 아일랜드 수교 25주년을 맞아, 한국 연극계 최초로 더블린 베케트 극장에서 지난 10월 21일부터 25일까지 초청공연을 가진 바 있다. 이번 공연은 귀국 후 다시 막을 올린 것으로 의미가 깊다. 공연 기간은 오는 28일까지로 이달 안에 마감되지만 관객이 끊이질 않고 있다. 주말뿐만 아니라 평일도 80% 이상의 관객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언제 올지 모르는 고도를 기다리는 블라디미르(디디)와 에스트라공(고고). 이들의 기억에 훼방을 놓는 포조와 럭키, 그리고 매일 저녁 찾아와 ‘내일은 고도가 온다’고 말하는 소년. 이렇게 다섯 인물이 등장하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는 앞뒤가 맞지 않는 부조리한 대화들로 이뤄진 듯하나, 그 이면에 오지 않을 무언가를 기다리고 집착하는 현대인의 삶을 통렬하게 풍자하는 날카로움이 숨어 있는 현대 부조리 연극의 대표작이다.
이번 공연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이유는 출연진의 무게감과 더욱 깊어진 연출이다. 1969년 초연부터 40년 동안 공들여 가꿔온 임영웅 연출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국제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극단 산울림의 대표적인 레퍼토리로 이번엔 더욱 강한 힘이 느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연출의 경우 임영웅을 떼어 놓고는 ‘고도를 기다리며’를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익숙하지만 이번 베케트 센터 초청 작품은 임영웅의 해석이 베케트의 작품세계와 잘 맞아떨어져 한층 더 진전된 느낌이 든다.
또 이번 공연엔 기존 베테랑 배우뿐만 아니라 신예들이 가세해 신구 조화가 완벽하게 이뤄졌다는 것도 관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귀국 공연엔 한명구, 박상종, 전국환 등 기존 고도를 기다리며 무대에 수차례 섰던 베테랑 배우들과 함께 박윤석, 김민석 등 신예 배우가 출연한다. 이번 연기진은 지난 10월 베케트의 본고장 아일랜드 더블린에서도 최고의 앙상블로 인정받은 바 있으며 그 어느 때보다도 생생한 감동을 관객에게 전달하고 있다. 디디 역을 맡은 한명구씨는 14년의 관록이 묻어나는 연기가 일품이다. 그는 지난 1994년부터 14년간 고도에만 9차례 오른 베테랑 중의 베테랑 배우로 TV에서도 익숙한 얼굴이다.
한정훈기자 exist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