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차의 무너진 자존심을 살려라.’
대형차는 각 메이커의 최고 기술이 집약된 차량으로 판매 마진이 높은 것은 물론이고 업체의 이미지와 직결되는 브랜드다. 이 때문에 연초부터 대형차 시장을 둔 업체 간 경쟁은 뜨거웠다. 올해 초 쌍용차가 기존 체어맨H에서 한 단계 진화한 체어맨W를 내놓은 데 이어 현대차는 제네시스를 출시했다. 또 지난 9월 GM대우가 후륜구동 대형 세단 베리타스를 공개하면서 대형차 시장의 본격경쟁이 예고되는 듯했다.
하지만 경기가 급격하게 나빠져 연말에 접어들면서 대형차 시장은 얼어붙었다. 실제로 지난 10월 체어맨W는 479대가 판매됐는데, 이는 9월 판매량에 비해 30.1% 감소한 수치다. 지난달 판매량은 180대로 더 나빠져 전달에 비해 34.3%가 감소했다. 베리타스의 시판 첫 달인 지난 10월 판매량은 162대에 그친 데 이어 지난달에는 불과 28대를 판매하는 저조한 실적을 보였다. 기아차 오피러스도 10월 판매량이 850대로 9월에 비해 15.0% 판매가 줄었다. 11월에는 755대로 뚝 떨어졌다. 현대차의 제네시스 판매량은 10월 1735대에서 11월 1193대로 추락했다.
업체 관계자는 “자동차 메이커들이 차종을 확대하는 선봉에 대형차가 있었고 시장 수요 역시 대형차를 흡수할 만한 여력이 있었다”며 “하지만 갑작스러운 경기 불황에 자존심을 건 업체 간 대형차 판매경쟁은 허무하게 끝났다”고 말했다.
비상이 걸린 완성차 업체들은 대형차 주 고객을 타깃으로 한 VIP마케팅으로 자존심 회복에 나서고 있다. 이른바 문화마케팅을 통해 지속적으로 고객들을 관리하겠다는 전략이다.
현대차는 제네시스 구매 고객 100쌍을 다음달 13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리는 ‘현대카드 슈퍼콘서트Ⅳ 플라시도 도밍고 내한 공연’에 초청하는 행사를 갖는다. 또 에쿠스 고객을 대상으로 골프대회를 열어 참가비를 어린이 교통안전실천연합회에 기부하고 그랜저 고객을 초청, 와인 파티를 개최하는 VIP마케팅을 진행 중이다.
쌍용차는 올 연말까지 700여명의 체어맨 고객에게 패션쇼와 와인테이스팅 행사, 다이아몬드 강연, 뷰티 클래스 등의 행사를 진행한다. 지난달에는 최경주 프로 골퍼를 초청하는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기아자동차는 매직스윙으로 유명한 프로골퍼 이병용씨를 ‘오피러스 고객을 위한 골프 레슨프로’로 위촉했다. 또 지난 9일 저녁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오피러스 고객 1000명을 위해 마련한 ‘기아자동차와 함께하는 추억의 7080 콘서트’를 개최했다.
한편 현대자동차는 내년 대형차 판매전망이 불투명해짐에 따라 당초 내년 2월께 내놓을 예정이었던 에쿠스 후속모델 VI(프로젝트명) 출시시기를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윤대원기자 yun1972@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