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은 새로운 규제기구인 방송통신위원회 출범, 융합서비스 IPTV 등장 등 우리나라 미디어 지형에 그 어느 해보다도 커다란 구조적 변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변화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융합서비스다. 이제 우리나라 유료방송 시장은 케이블, 위성, IPTV의 3개 축을 형성하게 됐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규제완화의 기조 속에 등장한 융합서비스는 무엇보다 미디어산업 활성화와 경쟁력 강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도입된 신규 매체의 부진한 성과와 세계 금융위기 때문에 미디어 산업에도 낙관적 전망을 가지기 힘든 실정이다. 또 겸영규제 완화 등 많은 새로운 미디어 산업 활성화 방안이 나오고 있지만, 규제 완화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에도 회의적 시각이 존재한다. 최근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주최로 열린 워크숍에서 전문가들은 규제완화 자체가 정책 목표가 돼서는 안되고, 다양한 사후적 규제의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러한 시각은 선발 사업자의 시장 독점력에 대한 견제장치나 경쟁원칙 없이 이루어지는 신규서비스 도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간 새롭게 등장한 신생 매체가 고전을 면치 못하는 이유도 선발 사업자의 시장 독점을 규제할 수 있는 유효 경쟁(workable competition) 기반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디어 산업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규제완화보다는 유효경쟁·공정경쟁 환경의 조성이 시급한 과제라 할 수 있다. 그간 새롭게 등장했던 매체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던 것은 규제 때문이 아니라 기존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의한 진입 장벽 때문이었다.
IPTV 서비스를 도입하면서 뒤늦게나마 콘텐츠 동등접근, 망 중립성의 개념이나 경쟁상황 평가 기구 도입을 부분적으로라도 추진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유효경쟁 기반 마련과 함께 또 다른 과제는 방송상품 덤핑 판매 규제다. 유료방송시장의 고질적 문제 중 하나인 저가 경쟁은 프로그램 생산자(PP)에 대한 낮은 수신료 배분으로 이어져 콘텐츠 산업 발전에 직접적 장애요소가 되고 있다. 현재의 극심한 경기침체 상황을 고려할 때 IPTV까지 덤핑판매 경쟁에 뛰어든다면, 향후 방송산업 전체의 공멸을 초래하는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
방송사업자도 이제는 소모적 경쟁을 지양하고, 매체 간 역할과 특성에 맞는 경쟁과 협력관계를 통해 새로운 서비스 영역을 개척하며 방송시장을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다.
올해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국제방송산업전시회(IBC)에서도 확인된 바와 같이, 선진국에서는 이미 이종 매체 간 하이브리드 서비스(방송+VoD)가 보편화되고 있다. 즉 한사업자가 방송, 통신의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제각기 중복된 투자를 하기보다는, 타 매체와 서비스를 결합해 투자 낭비요소를 줄이는 것이다.
효율적 투자와 방송통신 협력모델을 통한 새로운 서비스 시장의 개척은 극심한 경기 침체에 따른 시장규모 위축에 대처하는 방안이기도 하다.
시장 지배력 규제를 통해 공정경쟁의 기반을 마련하고, 이종(異種) 미디어 간 서비스 결합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다면 중복투자나 사회적 매몰 비용 없이도 미디어 산업 활성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몽룡 한국디지털위성방송 대표 pyong85@skylif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