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오른 기업 구조조정](중)컨트롤타워가 없다

  “과감한 실행을 위해서는 구조조정 총괄기구가 필수적이다.”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정부와 금융권의 떠넘기기로 혼선을 거듭하고 있다. 정부는 ‘민간이 알아서 할 문제’라며 금융에 책임을 전가하고 금융권은 실적악화를 우려해 부실기업 정리에 소극적이다. 정부내에서도 청와대,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등은 입장정리를 못하고 각자 목소리를 내는 상황이다.

이같은 상황을 종식시키기 위해 정부는 지난 9일 기존 채권금융기관조정위원회를 확대 개편해 구조조정 총괄기구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채권금융기관조정위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 따라 은행·보험 등 금융회사들과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등으로 구성된 민간 협의체. 구조조정 관련 조직을 새로 설립하기 보다는 기존에 마련된 채권금융기관 조정위원회의 위상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한 것이다.

금융기관조정위는 외환위기 당시 민간주도 구조조정 전담기구였던 ‘기업구조조정위원회’와 비슷한 성격이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236개 채권금융기관이 참여해 만든 기업구조조정위원회는 각계 구조조정 전문가들이 참여해 채권단의 이견을 조정하는 등 실질적인 구조조정 컨트롤타워 역할을 담당했다. 회생할 수 있는 기업은 최장 6개월까지 부도를 유예해 주고 회생이 어려운 기업은 퇴출시키는 결정을 내리며 구조조정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다.

그러나 금융기관조정위가 과거 기업구조조정위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현재 채권금융기관조정위는 협약운영에 따른 유권해석과 채권 금융기관간 발생할 수 있는 이견을 조정하는 것이 주요 기능이다. 협약의 운영기능만을 담당할 뿐, 기업개선을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입안하거나 시행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지금껏 채권금융기관 조정위원회 등은 유명무실한 기구로 존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채권 금융기관이 운영협약 등을 통해 상황에 대처하겠지만 현재 같은 느슨한 구조로는 각 기관 간 복잡한 이해관계를 풀기에 역부족일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하이닉스반도체에 대한 지원이 채권기관간 이견으로 지연되고 있는 것에서 보듯이 금융기관간 협의조정은 태생적으로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가 구조조정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금융기관을 독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상완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역할을 하려며 조직 구성원의 강력한 의지가 필수적”이라며 “또 조정위의 권한을 강화하고 정부가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정부로서도 건전성 악화에 직면해 있는 금융기관에 부실처리를 맡기기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정부가 더 총대를 매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허찬국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금융기관은 회피하려 할 것”이라며 “정부가 건전성을 책임지고 은행들이 가진 여신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적극적으로 지휘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