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신문이 연중기획으로 한 해 동안 연재했던 ‘전자산업 50년, 새로운 50년을 위해’ 시리즈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지난 1월 14일 출항해 12월 15일 45회로 긴 항해를 마치고 ‘무사히’ 선착장에 도착했다. 출발 당시 배경은 단순했다. 국내 기술로 처음으로 1호 라디오를 생산했던 1959년 무렵에 전자산업이 태동한 후 어떻게 성장·발전했는지 발자취를 더듬어 보자는 호기심이었다. 50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역사지만 기업체 혹은 정부 단체에서 나온 사사나 기록물 외에는 변변한 자료 하나 없었던 출발점이었다.
물론 우리가 진짜 원했던 숨은 뜻은 따로 있었다. 앞으로 50년을 위한 전자·정보통신 산업의 비전을 세워 보겠다는 취지였다. 50년 역사를 되짚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이로써 새로운 50년을 기약하자는 ‘숨은 미션’이 있었다. 다가올 50년은 흘러간 50년보다 우리 경제에 훨씬 지대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수많은 산업계 원로를 만나고 흩어진 자료를 수집해 45회라는 적지않은 분량의 기록을 남겼지만 역시 남는 것은 아쉬움이다. 과거 기록 복원에는 성과가 있었지만 미래 방향을 보여주는 데는 다소 미흡했다는 자책감 때문이다. 그나마 변명이라면 ‘희망’을 보았다는 점이다. 우리는 과거 ‘맨손’으로 시작해 ‘맨땅’에서 전자산업을 일궜다.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는 결국 전자·IT산업이 국가 경제의 동력이라는 확고한 사명감이 있었고 반드시 이루겠다는 열정으로 압축 성장에 성공했다. 그 결과 세계 어느 나라도 찾아 볼 수 없는 유례없는 기적을 만들었다. 지난해 기준으로 세계 전자시장 점유율 7%대로 미국·일본·중국에 이어 세계 4위에 올랐다. D램·플래시 메모리·휴대폰·디지털TV 등에서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전자 강대국으로 성장했다. 초기 전자산업 육성의 마스터플랜을 짰던 김완희 박사는 “백지 상태에서 외부 도움 없이 자력으로 이뤄냈다는 게 지금도 신기할 따름”이라며 “그만큼 새로운 역사를 만든다는 열정이 없으면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반세기를 지난 지금, 전자산업은 또 한번 위기를 맞고 있다. 미국발 금융 위기로 경기는 바짝 얼어 있고 모든 게 불확실한 ‘시계 제로’ 상태다. 국가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전자산업계도 폭풍 전야처럼 숨죽이며 납작 엎드려 있다. 그러나 자욱한 안개는 언젠가 걷힐 것이다. 따지고 보면 50년 전자산업 역사에서 순탄한 시절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시작부터 도전이었고 매 순간이 위기였다. 결과적으로 그러한 밑거름이 전자 대국의 든든한 뿌리 역할을 해 주었다. 뿌리 깊은 나무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강한 믿음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