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연말이 다 되도록 내년도 사업 및 예산을 확정하지 못해 향후 사업 추진에 상당한 차질이 우려되고 있다. 특히 연간 전체 예산의 20∼30%를 차지하는 신규 과제에 대해서도 아직까지 윤곽을 잡지 못하는 등 사업의 불투명성으로 인한 연구원 내부의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
14일 ETRI에 따르면 내년도 예산을 올해(5702억원)보다 조금 늘어난 5800억원대로 예측하고 있지만, 실제 예산을 뒷받침할 사업 과제가 확정되지 않아 전전긍긍하고 있다.
ETRI는 해마다 연간 80∼90%에 달하는 예산을 정보화촉진기금을 통한 정부 과제로 수주하고, 나머지는 민간 수탁 과제 및 기술료 등으로 예산을 확보해왔다.
ETRI는 매년 이맘때쯤이면 차기 연도의 예산과 과제를 확정지었지만, 올해는 상황이 예전 같지 않다.
최근 발표된 정부출연금 1035억원을 제외하고는 그간 연구소의 핵심 연구개발 재원이 돼 왔던 정보화촉진기금의 내년도 규모가 얼마나 될지 아직까지 가늠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추정치로 제시한 내년도 예산 규모는 수년째 진행 중인 계속 과제에다 그간 관례적으로 수주해 온 신규과제 비율을 임의로 추정해 합산한 것일 뿐 구체적인 사업 과제를 기반으로 산정한 것이 아니다. 특히 내년도 신규 과제는 아직까지 확정된 것이 거의 없어 ETRI 내부에서조차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ETRI의 예산 확보가 늦어지는 이유는 올해 새정부 출범과 함께 소속 부처 기관이 옛 정보통신부에서 지식경제부로 바뀌면서 과제 수주 방식이 총괄 개념에서 사업단위별 방식으로 달라졌기 때문으로 파악되고 있다.
ETRI에 따르면 과거 정통부 시절에는 ETRI가 추진하는 각종 과제 분야를 총괄적으로 관리하는 창구가 있어 차기 연도의 사업 예산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지만, 지경부로 바뀐 현재는 이러한 과제 총괄 부서가 사라진 대신 각 사업부서에서 과제를 발주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ETRI는 어쩔 수 없이 사업팀별로 지경부에서 신규 사업 공모가 날 때마다 그때그때 과제를 수주하는 각개전투식의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와 같은 상황이라면 정부의 각종 사업 공모가 끝나는 내년 2∼3월이 돼서야 전체적인 사업과 예산 규모를 확정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ETRI 관계자는 “상급 부처가 바뀌는 과정에서 예산 확보 방식이 과도기적 성격을 띠고 있는 것 같다”며 “어찌됐든 내년도 사업 진행에 차질 없도록 예산 확보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대전=신선미기자 sm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