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분야에서 범상치 않은 풍모와 기운을 지닌 사람을 ‘고수’라 일컫는다. 진짜 고수는 위기에, 어려운 상황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전체 경기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전자 업계도 꽁꽁 얼어붙었다. 시장에 찬바람이 불 때, 누구나 힘들다고 이야기할 때 팔리는 상품이 진짜 히트 상품이다. 불황기에도 소비자 사랑을 듬뿍 받는 상품은 여전히 있었다.
전자신문이 선정한 2008년 인기 상품은 어려움 속에서도 한발 앞서 시장을 읽은 제품이 단연 돋보였다. 이들은 불황기에도 과감하게 마케팅에 ‘올 인’하고 공격적으로 시장개척에 나서 ‘소비자 마음’을 훔치는 데 성공했다. 브랜드가 강한 제품과 디자인·아이디어를 가미한 제품이 특히 인기를 끌었다.
◇‘구관이 명관’, 브랜드 상품 두각=경기가 힘들면 소비자는 쉽게 지갑을 열지 않는다. 주머니에 돈이 있고, 없고는 둘째 문제다. 심리적으로 위축되게 마련이다. 불안한 소비자는 이전보다 훨씬 똑똑해진다. 더욱 많은 정보를 탐색하며 제품을 꼼꼼하게 검토한다. 그리고 결국 믿을 수 있는 제품을 찾는다. 바로 ‘브랜드의 힘’은 여기서 나온다.
하반기에는 해당 분야에서 브랜드가 강한 제품이 히트 상품으로 떠올랐다. 이동통신 서비스 부문에서는 SK텔레콤이 ‘고객 만족’에 뽑혔다. 초고속 인터넷 부문에서는 KT가, 인터넷 전화에서는 삼성네트웍스가 사랑을 받았다. 모두 해당 분야에서 수위를 달리는 업체다. 휴대폰·가전·컴퓨터 등 늘 접하는 전자 제품은 두말할 나위 없다. ‘애니콜’ 브랜드로 이동전화 시장을 평정한 삼성전자가 예외 없이 휴대폰에서 고객 만족 상품으로 뽑혔다. PDP TV·에어컨·냉장고에서는 LG전자가 독식했으며, 데스크톱PC·모니터에서는 삼성전자가 이름을 날렸다. 프린터와 디지털 복합기 부문에서는 ‘프린터 제왕’ HP가 상반기에 이어 고객 만족에서 최고 점수를 받았다.
◇‘일석이조’ 가치 상품 주목=불황기에는 마케팅 계획을 짜기가 쉽지 않다. 어떤 광고·프로모션·이벤트가 효과가 있을 지 측정하기도 힘들다. 그렇다고 마냥 가격에만 의존할 수도 없다. 가격은 품질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불황 터널을 지날 때는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시장 인사이트’를 통해 소비자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가치를 줄 때 소비자는 마음을 연다. 불황기에는 가치를 주어야 한다는 진리는 하반기 인기 상품에도 그대로 묻어났다. 같은 상품이지만 큰 가치를 준 상품이 히트 상품 대열에 올랐다.
MP4P 부문에서는 ‘오라컴’이 레인콤·삼성전자 등을 제치고 고객 만족에 뽑혔다. 브랜드는 약하지만 쉬운 인터페이스, 독특한 디자인이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내비게이션은 팅크웨어, 하이패스단말기에서는 AITS가 가격 대비 품질을 인정받았다. 명데이타, 안철수연구소, 프리스케일 등도 상반기에 이어 하반기에도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다시 ‘고수’ 이야기다. 처음 유도를 배울 때는 한동안 쓰러지는 연습 즉 ‘낙법’만 한다. 쓰러지는 훈련을 거쳐 다치지 않는 기술을 충분히 익힌 후에야 공격 훈련에 임하는 것이다. 기본에 강한 고수가 결국 진짜 고수다. 불황일수록 마케팅 기본에 충실한 기업이 시장에서 화답을 받는다. 전자업계의 내공 있는 ‘진짜’ 고수를 만날 새해가 기다려진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2008년 인기상품 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