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잘하는 것이 글로벌 시대의 필수사항일까. 좀더 구체적으로 흔히 우리가 이야기하는 ‘미국식 영어’ 또는 ‘영국식 영어’를 잘 구사하는 것이 글로벌 시대에 개인적인 성공조건, 또 세계적인 도시로 발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항일까. 이의 답을 홍콩에서 찾아보려고 한다.
홍콩은 흔히들 ‘아시아의 관문’이라 부른다. 요즘은 ‘나일롱콩(Ny-lon-kong)’이라고도 한다. 뉴욕(New York), 런던(London), 홍콩(Hong Kong) 등 대륙별 세계 금융의 중심 도시를 엮어서 만든 단어다. 숱한 별칭이 있겠지만, 21세기 들어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아시아의 대표 도시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그런만큼 홍콩은 흔히들 영어가 잘 통하는 도시로 알고 있고 사실이기도 하 다. 하지만 1997년 중국 반환 이후 10여년간 중국 본토 사람들이 많이 내려와 이전만큼 영어가 잘 통하지는 않는 것이 홍콩생활의 현주소다.
세계의 어느 도시든지 처음에 가면 언어 때문에 겪는 에피소드가 반드시 있다. 그래도 홍콩에서는 영어로 소통하는 데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믿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아니다. 영어로 의사소통이 힘든 일이 자주 일어난다. 이를테면, ‘앞머리는 적당히 골라주시고요, 옆과 뒷머리는 조금 짧게, 윗머리는 숱을 많이 쳐주세요’ 식의 영어는 미용실에서는 절대 통하지 않는다. 홍콩에서 소위 본토식이라고 하는 영국 영어와 미국 영어 발음은 대접도 못 받고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숫자 ‘9’를 ‘nine’이라는 본토식 영어로 발음했다가 못 알아듣는 바람에 ‘까우룽(홍콩의 9 발음)’을 하고 나서야 겨우 소통이 된 일도 있다.
물론 홍콩 대학의 수업 공식 언어가 영어기 때문에 사무직에 종사하는 화이트 칼라는 기본적인 영어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그러나 실생활에서의 의사소통 수준은 오히려 낮아졌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지난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 이후 중국 부자들이 너도나도 홍콩으로 내려와 여기저기 투자하고 소비하면서 서민층은 자연스럽게 중국 보통어인 ‘만다린’을 더 많이 쓴다. 영어는 점차 실생활에서 사라지는 추세다. 요즘 중국이 세계 각국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그중 투자 순위 1위는 홍콩이다. 지금까지 홍콩에 투자된 중국 자금은 3억6251만달러로 가장 많다. 또 홍콩의 무역현황을 보면 중국에서의 수입량도 1398억달러로 2위인 일본보다 5배가량이 더 많다.
실생활인 의식주 중 쇼핑을 제외한 나머지 재래시장, 음식점 종업원, 미용실, 부동산 상담, 택시기사 등은 이제 영어보다는 중국어가 훨씬 잘 통하는 실정이다. 오히려 본토 발음보다 ‘콩글리시’가 음식점에서나 택시 안에서 더 잘 통한다.
세계화라고 해서 영어가 전 세계 공용어가 되면서 얼마나 영어를 잘하는지는 세계화의 척도고 국가 경쟁력을 가늠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세계 경제의 다각화와 아시아 경제의 부상으로 ‘반드시 영어만이 살길은 아니다’는 것을 홍콩 생활에서 피부로 느끼게 된다. 그렇다고 영어를 아예 포기하고 중국어만 배우자는 주장 또한 아니다.
다만, 한국 사람들은 실력이 충분한데도 우선 주눅부터 들고, 발음이 미국식이 아니라고 작은 소리로 말하는 것이 조금 답답해 보인다. 홍콩의 택시기사와 미용실 직원처럼 의사소통 범위에서 크고 당당하게 말하면서 자기 실리까지 챙기는 자신 있는 모습이 좋아보인다.
싱가포르는 ‘싱글리시’라고 해 모든 문자의 끝에 ‘라(la)’를 붙이는 습관이 있다. 가령 오케이(OK)를 오케이라(OK la)라고 한다. 싱가포르 직원들의 영향을 받았는지 홍콩의 동료들도 요즘 라를 붙인다.
본토 영어라는 개념이 무너지거나 적어도 퇴색돼 가고 있다. 그렇다면 굳이 한국도 콩글리시를 버릴 필요가 있을까. 굳이 그렇게 발음에 신경을 써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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