퀄컴은 지난 1985년 7월 설립됐다. 이후 23년 만에 53개 이상의 국가에 진출한 글로벌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팹리스 분야 1위, 반도체 기업규모 순위 9위, 경제전문지 포브스의 100대 선정 기업 등 화려한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한마디로 ‘스타 기업’이다.
하지만 창립 당시만 해도 창업자 어윈 제이콥스 등을 비롯한 미국 엔지니어 7명이 모여 만든 무명 벤처기업이었다. 이들은 90년대 초 군사통신 기술을 응용해 CDMA란 원천기술을 개발했지만 이미 실용화된 GSM 기술에 밀려 미국에서조차 표준화에 실패해 도산 위기에 몰렸다.
우리나라가 수렁에 빠진 퀄컴을 건져냈다. 1992년 당시 체신부가 이동통신 표준기술을 CDMA 방식으로 표준화하겠다고 결정했다. 1996년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이 삼성, LG 등과 함께 퀄컴의 CDMA 기술을 이용해 세계 최초의 이동통신 서비스를 상용화했다. 이후 한국의 이동통신 산업과 퀄컴은 매년 급속한 성장을 달려왔다.
2세대 이동통신에서의 빛나는 성과를 놓고 우리나라 팹리스 기업과 시스템 업체들은 그 비결을 곰곰이 되새겨봐야 한다. 퀄컴이 우리 시스템 기업과 어떻게 기술협력을 했으며 세계화했는지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지금도 크기 때문이다. 특히 시스템 반도체 설계에 취약한 우리로선 CDMA 성공 신화가 팹리스와 시스템 기업 중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노력에 의해 달성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나쳐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퀄컴의 성공비결은 바로 효율적 분업에 있다. 퀄컴은 원천기술을 개발·관리하고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휴대폰을 생산·판매함으로써 ‘윈윈’해왔다. 물론 퀄컴은 한국에서 가져가는 과다(?) 로열티로 한때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전략적 파트너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퀄컴이 모든 것을 다하겠다는 고집을 부리지 않은 게 결국 큰 파이를 키웠다. 퀄컴은 애초 휴대폰 제조까지 CDMA와 관련된 모든 사업을 했다. 그러나 퀄컴은 제일 잘할 수 있는 분야만 집중하고, LG전자·삼성전자 등 협력사와 어깨동무를 하고 가면서 성장했다.
삼성·LG는 휴대폰 제조에 집중했고, 결국 퀄컴이 생산하는 휴대폰보다 훨씬 우수한 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됐다. TI와 ST마이크로가 CDMA 칩을 개발했으나 퀄컴에 눌려 상용화하지 못했다. 퀄컴 측은 “한국 휴대폰 업체들은 독일 인피니언, 미국 브로드컴 등 다른 대안이 있었으나 필요에 의해 퀄컴 통신칩세트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팹리스 산업이 발달하고 그 효과를 시스템·부품 산업이 얻으려면 양자가 서로 성장을 북돋우는 상생의 시장경제가 작동해야 한다”며 “특히 경기 침체일수록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 협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안수민기자 sma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