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부품업체는 연초부터 터져나온 일련의 사건들로 숨 돌릴 틈조차 없었다.
삼성 특검 장기화 여파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 협력사들이 속출했다. 곧 이어 떨어질 줄 모르는 원자재가·유가 상승에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큰 피해를 남기지는 않았지만 화물연대 파업 역시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 달러로 대금을 결제하는 기업들이 가입한 환헤지상품 ‘키코(KIKO)’ 태풍은 부품 기업의 건전성을 적지 않게 훼손했다. 북한의 12·1 조치로 개성공단에 공장을 둔 회사들은 골머리를 앓았다. 하반기 들어 세계 경제가 침체기로 접어들면서 각종 전자제품 판매가 감소한 데 따른 주문량 감소 영향도 고스란히 떠안았다. LG이노텍도 금융위기로 LG마이크론과의 합병을 새해로 미뤄야만 했다.
휴대폰 부품 업체는 삼성·LG의 휴대폰사업 약진을 외국 기업의 소식인 양 받아들였다. 주요 휴대폰 부품업체 20개사 중 70%의 영업이익률이 지난해보다 떨어졌다. 중국으로 삼성·LG의 생산물량 이전이 급속히 진행되면서 국내 사업을 놓고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코스닥 상장사로 한때 튼튼한 휴대폰 부품업체로 불렸던 D사는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로 130여명의 직원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기도 했다.
우울한 뉴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삼성전기는 연결기준 3분기 매출이 1조1925억원으로 분기 매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LG이노텍은 38년 만에 상장사의 꿈을 이뤘다. 세계적 부품사 반열에 든 회사들의 활약도 돋보였다. 아이엠은 일본 산요를 누르고 DVD용 광픽업 세계 1위에 올라섰다. 비에스이는 휴대폰용 마이크에서 일본 경쟁사를 따돌리면서 세계 1위 수성은 물론이고 점유율 확대에도 성공했다. 모아텍 역시 세계 스테핑모터 시장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터치스크린폰과 500만화소 이상 카메라폰 시장이 본격 개화하면서 관련 부품업체들은 특수를 만끽했다. 이들 부품 업체는 내년 이후 시장 확대에 대비해 분주한 한 해를 보냈다. 투자여력이 한계에 도달한 중소 터치스크린 제조사는 대기업에 잇따라 매각됐다.
산업용 중전기기는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힘든 경영환경에도 불구하고 해외진출로 꾸준한 성장세를 거뒀다. LS산전은 내수보다는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려 수출과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에 주력했던 한 해였다. 공작기계 업계는 해외수출 증가에 힘입어 성장가도를 달리다가 4분기에 주춤했다. 승강기업체는 건설경기 불황으로 직격탄을 맞고 어려움 속에서 헤맸다. 전기차 업계는 고유가 바람을 타고 궁극적인 친환경 교통수단으로 사회적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정부의 오랜 무관심에서 벗어나 제도권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로봇업계 역시 전반적으로 어려운 한 해를 보냈다. 산업용 로봇은 자동차, 전자산업의 설비투자가 줄자 해외 진출로 매출을 유지했다. 지능형 로봇 분야는 옛 산자부와 정통부의 통합으로 새로운 활력이 기대됐으나 오히려 실망스러운 결과를 보였다. 로봇랜드 유치전은 지리한 심사과정 끝에 인천과 마산이 공동유치를 확정지었다.
배일한·설성인기자 bail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