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방산업군을 포함해 연 10조원대 규모로 성장한 인쇄회로기판(PCB) 업계가 올 들어 덩치에 걸맞게 산업 체질을 한층 강화했다는 평가다. 대규모 인수합병(M&A)을 통해 규모의 경제에 나서는가 하면 세계 최대 시장으로 부상한 중국에 본격 진출하기 시작했다. 장비·설비 업계는 세계 각국으로 수출 활로를 였다. 우리 PCB 업계가 고부가가치 시장을 장악한 일본과 물량 공세에 나선 중화권의 틈바구니에서 ‘샌드위치’ 신세를 면하기 위해 산업 구조를 크게 고도화한 셈이다.
◇M&A로 규모의 경제를=올해 PCB 시장의 가장 특징적인 경향을 꼽으라면 단연 M&A다. 과거 중소 PCB 업체들이 단행한 M&A 사례가 일부 있었으나 올해엔 면면부터 달랐다. LG그룹의 경우 지난 5월 LG마이크론이 LG전자로부터 PCB 사업을 넘겨받으면서 삼성전기에 버금가는 종합 부품회사를 선언했다. 하반기 갑자기 금융시장이 불안해진 탓에 연말 LG마이크론과 LG이노텍의 합병은 다소 미뤄졌지만 LG도 PCB 사업을 그룹 차원에서 본격 육성하겠다는 강한 의지다. 최대 PCB 업체인 삼성전기는 지난 10월 대만 PCB 업체 ‘J3’의 중국 쿤산 생산법인인 ‘유니캡’을 인수하기로 계약했다. PCB용 폴리이미드(PI) 필름 분야에서 양대 업체였던 SKC와 코오롱은 마침내 각자의 사업부를 떼내 지난 6월 ‘글로엠’이라는 합작사를 설립했다. 국내 시장서 소모적인 경쟁을 지속하기 보다, 전향적으로 힘을 합침으로써 해외 업체와 맞설 자생력을 확보하려는 시도로 평가됐다.
◇중국 진출 본격화=중원 진출의 본격적인 신호탄은 중견 PCB 업체인 비에이치(대표 김재창)가 먼저 끊었다. 비에이치는 국내 PCB 업체로는 처음 지난 6월 중국 산동성에 직접 투자를 통해 PCB 생산 공장을 짓고 가동에 들어갔다. 국내 중소·중견 PCB 업체 가운데 합작 내지 간접 투자 형식으로 중국 시장에 들어간 적은 있지만 직접적인 대규모 투자로는 최초다. 특히 이 공장은 연성 PCB와 경성 PCB의 월 생산능력이 각각 2만㎡에 달한다. 가동 첫해인 올해에만 1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삼성전기도 중국 유니캡 인수를 통해 중국 현지 휴대폰 시장에 더욱 공세적으로 나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설비산업 시장 다변화=대표적인 PCB 후방산업인 장비·설비 업계는 올해 수출 시장을 지구촌 전역으로 확대했다. 세호로보트산업(대표 김세영)은 ‘커버레이 자동가접기’ 장비를 일본의 교세라에 지난 7월 공급했다. 또 제4기한국(대표 백태일)은 지난 8월 인도 PCB업체인 ‘프리즘 서키트로닉스 PVT’사에 ‘플라즈마 디스미어’ 시스템을 수출했다. 이에 앞서 에스엠씨(대표 이수재)는 지난 2월 프랑스의 ‘FCI마이크로커넥션즈’에 PCB 동도금 장비를 수출했다. 기가비스(대표 김종준)는 자체 개발한 자동광학검사장비(AOI)가 200억원의 수입대체 효과를 거두며 세계 시장 1위에 오른 공로를 인정받아 올해 수출의 날에 ‘동탑산업훈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국전자회로산업협회 임병남 사무국장은 “특히 국내 설비업계가 PCB 기술 종주국이랄 수 있는 일본에 진출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면서 “올해 어려운 여건속에도 PCB 산업의 전반적인 체질은 훨씬 강해졌다”고 설명했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