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극복 경영 이렇게] "변화에 대한 준비가 기업을 바꾼다"

[위기 극복 경영 이렇게] "변화에 대한 준비가 기업을 바꾼다"

 기원전 480년에 벌어진 ‘테르모필레 전투’는 그리스군을 대표하는 스파르타의 정예 300명이 페르시아의 10만대군을 맞아 4일간을 버텨낸 기적의 전투로 기록돼 있다. 대다수 그리스인은 전혀 승산이 없는 전투로 여겼다. 항복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 왕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뜻을 같이한 300명의 전사를 이끌고 당당하게 나아갔다. 한 번에 통과할 수 있는 인원이 제한된 협곡 ‘테르모필레’에서 그와 그의 전사들은 4일간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10만 대 300의 전투에서 그는 3일 내내 대승을 거뒀다. 영화 ‘300’으로 널리 알려진 이 전투는 지금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영화는 이를 절대 열세에 맞서 싸운 불멸의 용기를 보여준 전투로 그리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자신의 믿음을 시험하는 장으로 생각한 스파르타 레오니다스 왕의 위기 대처론을 읽을 수 있다.

 

 지난 1997년 한국전기초자가 보여준 기적도 이와 유사한 사례다.

 한국전기초자는 당시 미국의 세계적 경영컨설팅사인 부즈앨런앤드해밀턴사로부터 ‘현재의 경쟁력으로 볼 때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경영진단을 받았다. 그로부터 한 달 뒤 노조의 파업으로 한국전기초자는 공장을 폐쇄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전기초자의 총부채는 4700억원, 부채비율은 1114%에 달해 있었다.

 그러나 한국전기초자는 새로운 사장인 서두칠 대표가 취임한 1년 뒤 경상손익이 600억원 적자에서 307억원 흑자로 전환됐고, 부채비율은 174%로 낮아졌다. 그는 취임 3년 만에 무차입 경영을 실현했고, 700여개 상장회사 가운데 영업이익률 35.5%로 수위를 기록하는 등 부도 위기의 퇴출기업을 초우량기업으로 변신시켰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성과가 일체의 자산 매각이나 인적 구조조정 없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이를 기적이라고 말하지만 서두칠 사장은 그의 저서 ‘우리는 기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기적은 없다. 우리는 다르게 했을 뿐이고 노력의 결과를 얻은 것뿐이다.”

 서 사장은 당시 퇴출 위기에 몰린 한국전기초자를 부실에서 건져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오히려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들고자 했다. 위기를 위기로 보지 않고 보다 큰 목표를 위해 전 직원이 똘똘 뭉칠 수 있는 기회로 보았던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 직원들에게 예전의 두세 배가 넘는 작업량을 요구했고 그가 앞서서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보여주고 회사의 상황에 대한 투명한 정보공개를 함으로써 모두가 한마음이 될 수 있었다.

 ◇또다시 주목받는 위기경영=국내 주요 기업들이 ‘위기경영’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세계적인 경제 위기 상황이 장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 때문이다.

 특히 중소기업들은 최근의 경기를 외환 위기 때보다 더 춥게 느끼고 있다. 공식적으로 발표되는 수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실물 경기가 얼어붙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기업은행 경제연구소가 전국 2514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09년도 중소제조업 경기전망 조사’에서는 국내 중소기업의 22%가 경영 위기를 스스로 극복할 수 없다며 정책적 도움이 절실하다고 요구했다.

 올해 추가적인 경영 악화가 있을 것이라고 답한 기업도 34.4%에 달했고, 49.8%는 업황 개선 시점을 2010년 이후로 보거나 개선되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한 차례 심각한 경제 위기 상황을 겪어낸 바 있고 이번 경제 위기는 지난번 외환 위기 때와는 다른 점이 많다.

 지난번 외환 위기를 맞기 전에는 우리 기업들의 위기경영 방식이 위기가 발생하고 난 뒤에야 대응하는 데 급급했다면 이번에는 사전에 준비할 수 있다.

 외환 위기 당시 진행된 기업들의 위기경영은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저수익 사업에 무리한 투자를 하고 과다한 차입으로 운영을 하다 보니 유동성 위기를 겪었고 결국 생존을 위해 자산을 매각하고 인원을 감축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해야만 했다.

 ◇미래를 위한 준비가 성패 좌우=하지만 최근 대두되고 있는 위기경영은 성격이 많이 다르다. 지금 당장의 사활보다는 미래를 위한 준비 성격이 강하다.

 또 다른 사례를 보자. 1967년 자본금 5000만원의 평범한 직물회사였던 SK는 당시의 경제 위기 상황을 강력한 추진력으로 돌파했다. 남들이 현 상황에서 살아남기에 급급할 당시 선경은 오히려 과감한 투자를 단행했다. 자본금 5000만원에 불과한 기업이 수십억원을 들여 원사공장을 짓고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섰다. 현재의 위기에서 살아남기에 몰두하기보다는 시야를 세계로 돌려 보다 큰 그림을 그리고자 했던 것이다.

 SK는 또 거듭되는 실패에도 정유사업에 뛰어든다. 거듭되는 실패를 무릅쓰고 밀어붙인 끝에 현재의 SK그룹으로 급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된 정유사업의 기틀을 다지게 된다.

 이 같은 SK그룹의 성장 배경에는 최종현 전 회장의 뚝심 있는 위기경영이 있었다는 것이 재계의 평가다. 당시 주변에서는 대부분 무리라고 고개를 저었지만 그는 자신 있게 성장 전략을 추진, 과감하고 혁신적인 발상의 전환으로 오늘의 SK그룹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성공만큼 더 큰 실패 요인은 없다’고 한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일정 수준의 성공을 경험한 후 과거의 성공 방식을 고수하면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위기경영에 강한 기업들은 시장 변화에 앞서 필요한 경쟁력을 미리 확보한다. 최근 주요 기업들이 M&A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번 외환 위기 때 처절하게 경험했듯 위기 상황에서는 생존을 위해 핵심사업을 내다 파는 기업이 있게 마련이다. 미래를 준비하는 기업들은 이런 알짜배기 사업에 벌써부터 눈독을 들이고 있다.

 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