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히 50m는 넘어 보였다. 천안 종합터미널에 내리자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 행렬이 대기 전용차선 3개를 가득 메운 채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것도 한참 바빠야 할 퇴근 무렵 저녁 시간대였다. 불과 3개월 전, 택시를 대기가 무섭게 손님이 잡아타던 풍경과 사뭇 대조를 이뤘다. 한 택시 운전기사는 “연초와 비교하면 (매출이) 반의 반도 안돼. 당최 출퇴근을 해야 말이지 원…”이라는 말로 침체된 지역 경기에 대한 설명을 대신했다. 한때 지역 거점 성장의 모범이었던 ‘LCD의 도시’ 천안의 아성이 흔들리고 있다. 전반적인 경기침체야 모두 겪는 일이라지만, 삼성전자 LCD 클러스터라는 경제 구조 탓에 그 여파는 더욱 크다. 최근 삼성전자가 천안 LCD 사업장 생산물량을 대폭 감산하고 연말 장기휴가에 돌입하면서 인근 협력사들도 일감이 확 줄어드는 연쇄 반응이다. 2008년 12월말, 천안은 출퇴근족이 사라진 ‘휴가’의 도시다.
◇아직 태풍 전야=문제는 천안의 ‘진짜 위기’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천안 3공단에 있는 삼성전자 협력사중 상당수는 장비·설비업체들이다. 올해 삼성전자가 7·8세대 LCD 라인 설비 투자 물량을 많이 발주한 덕분에 새해 상반기까지 수주 잔고가 어느 정도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LCD 라인 신증설 투자는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 새해 하반기부터 수주 물량이 실종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삼성전자 8-2 1단계 라인의 장비를 생산중인 한 업체 관계자는 “중국 LCD 패널 업체들이 내년에 일정 정도 투자한다면 겨우 연명할 수 있는 수준이 될지도 모르겠다”면서 “내년 하반기 전망은 암울 그 자체”라고 토로했다. 지금은 삼성전자의 감산 여파가 인근 부품·소재 업체들에게 직접 영향을 주지만, 새해엔 장비 업체들까지도 줄줄이 타격받는 진짜 위기가 올 수 있는 것이다.
◇탕정·아산으로 중심축 이동=삼성전자 LCD 클러스터의 중심축은 천안에서 탕정·아산으로 이동했다. 최근 TV용 패널에 집중된 탕정보다 IT 및 중소형 패널을 주로 생산하는 천안 라인의 생산 감소 폭이 크다. 삼성전자는 지난 2003년 6라인 투자를 끝으로 더 이상의 천안 지역내에서 신규 투자가 없었다. 그 대신 탕정 지역에 7·8세대 첨단 라인들이 들어 섰다. 이에 맞춰 삼성전자는 내년 2월 탕정에 3781세대 규모의 삼성전자 직원용 아파트를 분양한다. 천안 사업장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대거 탕정·아산으로 이사할 예정이다. 인구성장도 정체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천안시 인구는 삼성전자 LCD 라인이 들어선 지난 1996년부터 매년 2만명 가까이 늘어났다. 그러나 근래 3년간 인구 증가는 연 1만명 수준으로 급격히 줄었다.
◇믿는 건 11세대 투자뿐=천안 지역 경제가 유일하게 기대하는 것은 삼성전자의 11세대 LCD 라인 투자다. 상반기만 해도 삼성전자의 11세대 투자를 준비하기 위해 일부 협력사들은 공장 확장을 계획했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내년도 11세대 투자 규모를 부지와 건물의 ‘공사비’ 수준으로 동결하자 협력사들의 투자 계획도 전면 보류됐다. 한 업체 공장에는 확장을 위해 마련한 부지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것이 현실. 이 여파는 천안시 경제 전반으로 ‘실시간’ 파급된다. 한 협력사 관계자는 “핵심 장비들의 발주부터 입고 기간이 1년이상 걸려 환율만 조기에 안정되면 11세대 투자도 소폭이나마 당겨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천안은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의 투자가 해당 산업 뿐만 아니라 지역 경기에 얼마나 중요한지 말 없이 보여준다.
안석현기자 ahngija@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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