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은 모으고, 사업은 쪼개고…’
중소 인쇄회로기판(PCB) 전문업체 비에이치의 능수능란한 불황타파 기법이 업계 이목을 끌고 있다. 위기가 닥치기 전 조금씩 현금 자산을 확보하는가 하면, 최근 어려운 상황에도 신사업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제품군 다각화는 기본이다. 내년도 업황하락에 경제위기가 겹쳐 전에 없던 위기를 맞을 것으로 예상돼, 업계 모범이 될 전망이다.
이 회사는 PCB 업계가 비교적 호황이던 지난 2000년부터 국내 대다수 시중은행에 일정금액의 적금을 부어왔다. 8년이 지난 현재, 원금과 이자를 합쳐 총 40억원에 달한다. 그 외 외화 예금 등을 통해 확보한 현금성자산이 총 80억원 규모다. 큰 액수는 아니지만 한푼이라도 아쉬운 시점에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다. 김재창 사장은 “평소 너무 많은 현금을 쌓아두면 투자 적기를 놓칠 수 있다”면서도 “불황에 대비하면서 투자에 지장이 없을 만큼의 대비는 해둬야 한다”고 설명했다.
올초 진입한 우즈베키스탄 금광 사업도 순항을 거듭했다. 카에라가치·아라블락·구름사이 등 3개 광산에 채굴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르면 새해 상반기 본격 매출을 기록할 전망이다. 새해에 PCB 업계가 극심한 부진을 겪을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다소나마 완충작용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는 대목이다. 현지 채굴업체 지분 절반을 인수, 경영권도 확보했다. 김재창 사장은 “올 초만해도 지금과 같은 위기를 예상하지 못했지만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 신사업에 진출키로 했다”며 “굳이 PCB 업체라는 정체성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기존 사업에서의 제품 다각화도 꾸준히 추진했다. 당초 연성(F)PCB 업체로 출발했지만 최근에는 경성(R)PCB도 활발히 생산하고 있다. 지난 6월 완공한 산둥성 공장은 FPCB·RPCB를 각각 2만㎡씩 생산할 수 있다. 중국 업체들의 저가공세로 시장이 초토화된 상황에서도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 3분기 매출 177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47.5%나 급등했다. 3분기 누적 매출액 500억원으로 이미 지난해 총매출 512억원에 육박했다. 누적 영업이익 16억원을 기록, 적자에 허덕이던 PCB 업계서 중소기업 중 거의 유일하게 흑자를 기록했다.
향후 발광다이오드(LED)를 적용한 애플리케이션이 증가할 것에 대비, 세라믹 PCB 개발에도 박차를 가했다. 발열량이 많은 LED 특성을 감안, 세라믹 소재 방열 PCB를 속속 출시했다. 사업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지난 2005년 세라믹 PCB 전문업체 비에이치세미콘(대표 이재천)을 설립키도 했다.
안석현기자 ahngija@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