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정부는 미국의 무역 기조를 완전히 바꿔 놓을 전망이다. 오바마 당선인 성향이 자국 내 일자리 보호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데다 최악의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미국 상황도 새 정부의 경제 개입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회 선거에서 보호무역주의 성향의 민주당 의원들이 상·하원에 대거 포진하게 돼 자동차·가전 제품 등 특정 품목에 통상 압력이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른바 ‘신보호무역주의’의 등장이다. 금융위기 극복, 노동 기준 강화, 친환경 정책 등이 명분으로 내세워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통상, 무역 분야에서는 한미 간 마찰도 우려된다. 우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비준이 어려워질 전망이다. 재협상론이 고개를 들 것으로 보인다. 국내 자동차 시장을 개방하라는 압력도 거세지고 반덤핑 판정을 강화하는 조치도 잇따를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일각에서는 신보호무역주의가 중국을 겨냥하고 있는 미·중 경제 관계 변화에 따른 기회 요인도 적지 않은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특히, 오바마 당선인은 ‘조작’이라는 용어까지 써가며 중국 위안화 절상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중국 위안화 가격이 오르면 국내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원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게 된다.
오바마 정부 시대에 ‘IT강국’ 한국 이미지를 최대한 홍보하고 한국의 성공 전략을 전파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한다면, 미국 정부의 IT 인프라 개선에 따른 큰 시장을 얻게 될 전망이다. 오바마 당선인은 인프라 확충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면서 차세대 초고속 정보통신망을 설치하겠다고 강조해왔다. 오바마 선거참모 중 상당수가 강력한 IT 정책 드라이브를 요구하고 있는 등 강력한 테크노크라트의 등장도 기대된다. 미국의 노후화된 전력시설 확충 방안이 마련되면 앞으로 3∼5년간 전력기자재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국내 통신케이블 업체들도 미국 전력 시설 확충에 따라 전력기자재 수요 확대에 기대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오바마 당선인은 교육·의료·에너지 등 모든 분야에 인터넷과 첨단 기술을 접목해야 미국의 변화와 혁신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인터넷을 활용한 e러닝 활성화와 같이 중산층 또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 수 있는 산업에 새로운 정부가 전략적 투자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인터넷 시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업체는 미국 진출 호기를 맞게 될 전망이다.
오바마 당선인과 이명박 정부가 모두 ‘그린에너지’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았다는 점은 또 다른 기회다. 오바마 당선인은 2018년까지 10년 동안 1500억달러를 투자해 석유를 대체하는 에너지를 개발하고, 이를 통해 500만명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을 공약으로 삼았다. LED 등 에너지 절약 부품, 태양 에너지 관련 부품이나 풍력 터빈 등과 같은 대체 에너지 관련 제품들을 생산하는 국내 업체들이 수혜를 보게 될 전망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보고서에서 “미국에서 환경 및 재생에너지 부문의 투자가 늘 것으로 예상돼 한국의 녹색성장 기반을 구축하는 데도 유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라고 평가했다. 반면에 친환경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제품은 미국 내 도입 자체를 거부할 수도 있기 때문에 친환경 제품 생산기술을 선제적으로 확보해 놓을 필요가 있다.
자동차, 철강, 섬유산업 분야에는 부정적 영향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KOTRA는 대미 수출 비중이 매출의 10%에 이르는 철강 분야의 부정적 효과에 대해 우려했다. KOTRA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경제통상정책 방향 전망과 시사점’에서 “미국 철강업계에는 한국과의 철강무역에 불공정 요소가 있다는 의견이 많다”며 “전반적인 보호무역주의 강화 움직임과 함께 한국산 철강제품의 반덤핑 규제가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미국 자동차 산업의 문제는 한국 자동차의 미국 진출에 발목을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GM과 포드, 크라이슬러 등 이른바 ‘빅3’에 대한 구제 금융이 확정됐기 때문에 오바마 정부는 자동차 산업을 살려야 한다는 과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이에 따라 새 정부는 자국 자동차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후속 정책을 잇따라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류현정기자 dreamsho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