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신년사] 위기를 기회로 바꿉시다

 기축년(己丑年) 새해가 밝았다.

 한 해를 시작하는 아침인데도 사상 최악의 불황을 겪을 것이라는 암울한 예고가 지친 어깨를 짓누른다. 올해가 태동 50년을 맞아 뜻깊은 한 해가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전자정보통신(IT) 산업계도 착잡하기만 하다. 경기 침체 때문만은 아니다. 자긍심에 큰 생채기가 났다.

 IT업계는 국민소득 2만달러, 수출 4000억달러 달성의 주역이다. 반도체·디스플레이·휴대폰·TV·초고속 인터넷 등 숱한 세계 일등 성공신화의 주인공이다. 코드분할다중접속(CDMA)에 이어 무선 휴대인터넷 와이브로로 세계 이동통신사를 다시 쓰고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질 성장 동력이라는 데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화려했던 스포트라이트는 꺼지고 관객도 자리를 떴다. ‘너희가 있었기에 국가 경제와 사회가 이만큼 발전했다’는 환호와 갈채는 온데간데없다. 제품 개발을 위해 수많은 밤을 지새우고, 중동의 뜨거운 사막을, 얼어붙은 러시아 벌판을 마다않고 발로 뛴 우리 산업인들은 허탈하기만 할 뿐이다.

 그러나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우리에게는 탄탄한 저력이 있다. 기업가 정신 하나로 불모지에서 꽃을 피웠던 우리가 아닌가. 국가비상사태까지 몰고왔던 10년 전 외환 위기도 극복해내지 않았던가. 뒤집어 보면 지금처럼 좋은 기회가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 새해는 진정한 승자를 가리는 한 해가 될 것이다. 우리보다 앞선 선진 경쟁사는 사상 초유의 위기에 갈팡질팡한다. 우리를 바짝 뒤쫓던 후발 경쟁사들은 힘에 부친 표정이 역력하다. 10년 전 외환 위기로 내성을 길러온 우리는 상대적으로 건재하다.

 혼자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물론이고 대기업과 대기업, 산업계와 대학·연구계, 민과 정부가 서로 힘을 합쳐야 한다. ‘상생협력’이야말로 올해 우리가 한 단계 더 도약할 것인지, 나락에 떨어질 것인지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 대기업이 앞장서야 한다. 대기업이 할 일이 수두룩하지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과감한 투자다. 불황기에 투자를 소홀히 했다가 정작 호황기에 기회를 놓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가능성이 엿보이면 설비와 연구개발이든, 인수합병(M&A)이든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중소 협력사도 살고, 산업 생태계도 되살아난다.

 집권 2년차인 이명박 정부의 역할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난해 거듭한 시행착오를 거름 삼아 새해에는 하루빨리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고 안정적인 국정 운영의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경제살리기는 집권을 가능케 한 이유면서, 이제는 정권의 생명줄이 됐다. 지금 친환경과 디지털 컨버전스라는 양대 맨틀이 지구촌 밑바닥에서부터 거대한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이로 인한 지각변동에 신속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힘은 녹색성장과 디지털 컨버전스를 관통하는 IT산업에 있다. 경제 살리기의 승패가 IT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가 디지털 뉴딜 정책에 온 힘을 쏟아야 하는 이유다. 국내총생산의 25%, 수출의 35%를 차지하는 국내 최대 규모이자 이미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분야다. 4대 강 유역 정비사업이 당장의 일자리 창출에 유익하다면 디지털 뉴딜에는 우리의 미래가 달려있다. 디지로그 젊은층에게 녹색과 컨버전스로 무장된 무한한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길이 여기에 있다. 금융과 세제, 연구개발 지원은 물론이고 신시장 창출과 인재 양성, 나아가 중소벤처 기업 육성에 정책 역량을 모아야 한다.

 이미 세계 각국 정부는 미증유의 불황을 예방하고 극복하기 위해 인플레이션 우려를 무릅쓰고 천문학적인 재정지출 확대에 나서고 있다. 우리에게는 반가운 신호탄이다. 중국보다 높은 품질에 일본보다 우수한 가격 경쟁력, 세계 으뜸의 컨버전스 능력으로 무장한 우리 IT업계는 최대의 호기를 맞을 수 있다. 목표를 향해 소처럼 뚜벅뚜벅 나아가자. 한참을 땀흘려 걸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위기가 기회로 바뀌는 희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기축년, 소의 해가 우리에게 주는 희망이며 화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