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가 서로 LCD 패널을 사주기로 했던 ‘교차 구매’ 약속이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애초부터 실천 의지 없이 여론에 떠밀려 결정했던데다 최근 시황이 악화되면서 각사의 공급 물량을 내부에서 소화하기도 급급한 상황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양사의 LCD 패널 교차 구매는 지난 2007년 한국디스플레이협회 출범후 2년 가까이 범 업계 차원의 ‘대대 상생협력’ 과제로 추진된 사안이어서 주위의 실망이 크다.
6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LG디스플레이(LG전자)는 지난달부터 모니터용 LCD 패널을 서로 사주기로 했었으나 아직 발주 계획조차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당초 지난해 9월 협회 차원에서 LG전자 DD사업본부는 삼성전자의 LCD총괄에서 22인치 와이드 모니터용 LCD 패널 월 4만장을 조달하기로 약속했다. 또 삼성전자 VD사업부는 LG디스플레이로부터 이달부터 17인치 와이드 모니터용 LCD 패널을 역시 월 4만장 규모로 사기로 했었다. 하지만 한달 이상 지난 현재 양사는 향후 계획조차 밝히지 않은채 교차 구매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당초 지난달부터 구매하기로 했던 LG전자는 삼성전자 LCD총괄이 빠르면 이달말 제품을 개발할 수 있다고 통보해와 구매 결정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LG전자 관계자는 “이달말 개발이 끝나면 그때 가서 구매 여부는 물론 시기나 물량도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달부터 삼성전자 VD사업부는 LG디스플레이에서 17인치 모니터용 LCD 패널을 사기로 했지만 약속후 넉달이 다 되로록 발주는 커녕, 제품 개발도 요청하지 않은 상태다.
이처럼 양사의 LCD 패널 교차 구매가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은 애초부터 의지가 결여된 채 정부와 여론의 눈치를 보고 약속했던데다 최근 시황 악화로 인한 요인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모니터용 LCD 패널 시장이 판가 급락과 수요 침체로 직격탄을 맞자, 삼성전자 VD사업부로선 식구인 LCD총괄의 패널을 사주기도 벅찬 상황이며, LG전자와 LG디스플레이도 사정은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러나 ‘비즈니스 논리’라곤 해도 삼성과 LG가 협회 출범 당시부터 2년 가까이 업계와 정부에 했던 약속을 끝내 지키지 못하자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가뜩이나 수요 침체로 양사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마당에 여전히 대만산 패널을 상당 비중 조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3분기 기준 삼성전자 VD사업부는 전체 모니터용 LCD 패널 구매량의 63% 이상, LG전자는 42% 이상을 각각 대만·중국으로부터 수입해 쓰고 있다. 양사 모두 나머지는 삼성전자 LCD총괄과 LG디스플레이에서 사들였다. 당초 협회 차원에서 예측한 패널 교차 구매 성사로 인한 무역 수지 개선 효과가 연간 6000만달러 달할 것이라던 기대가 무색한 셈이다.
특히 TV·노트북과 달리 모니터용 LCD 패널의 경우 양사의 기술 방식이 동일하고 규격도 표준화돼 있다는 점에서 제품 개발 지연 등은 궁색한 변명이라는 지적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지금처럼 시장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내부 구매 물량을 늘리거나 최소한 유지할 수밖에 없는 현실 아니냐”면서 “갑자기 대만산 패널 구매를 줄일 경우 국가간의 무역 마찰 소지도 있다”고 토로했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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