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IT인프라 관리와 IT프로젝트 수행을 책임지는 CIO. 과거 CIO의 역할이 IT 부서 내에서 수직적으로 움직였던 것과 달리 최근 CIO의 역할은 IT 부문을 넘어 회사 경영 전반에 걸쳐 횡적으로 팽창하고 있다. 현업 부서의 요구를 IT라는 도구를 통해 해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경영·인사·재무 등의 안목을 고루 갖추고 기업의 혁신을 앞서 이끄는 것이 바로 CIO다. ‘IT’와 ‘경영’ 사이의 상관관계를 무한대로 확장시켜나가고 있는 국내 최고 CIO들을 통해 기업의 새로운 혁신 기회를 모색한다.
보험업은 흔히 인지(人紙)산업으로 불린다. 모든 서비스가 보험설계사(人)와 보험약관(紙)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험업은 황주현 교보생명 부사장(56)과 만나면서 인지(人紙)산업에서 ‘인지(人知)’ 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보험업의 지식정보화를 주도하며 보험업계의 ‘뉴IT’를 선도해 온 황 부사장을 광화문 교보생명 사무실에서 만났다. 분신 같은 노트북PC를 들고 나타난 그는 CIO의 역할론을 쉬지 않고 풀어냈다.
◇IT, 느림의 미학은 없다=교보생명은 지난 2000년 이후 정보화전략계획(ISP) 수립을 기존 5년에서 3년 단위로 바꿨다. 황 부사장에 따르면 기술발전과 변화 속도가 워낙 빨라 5년 단위 계획은 ‘무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는 정보화에서 △먼저 △빨리 △제때 △자주의 네 가지 요소를 항상 강조한다.
황 부사장은 “고객과 현업부서의 요구를 ‘먼저’ 파악해 ‘빠르게’ 해결하고, ‘제때’ 투자가 이뤄지도록 ‘자주’ 안팎의 상황을 모니터링해야 한다”며 “이것이 IT부서의 핵심 기능”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역량이다. 그는 컴퓨터는 그저 도구일 뿐, 정보화는 컴퓨터가 아니라 사람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황 부사장은 IT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그치지 않고 회사 비전 달성에 필요한 인재역량 강화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그는 매년 우수 사원을 교보 IT MVP와 신인상 등으로 선정해 격려한다.
◇아웃소싱, 새로운 시대를 열다=‘CIO 황주현’을 논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아웃소싱이다. 교보생명은 지난 2006년 한국IBM과 10년간 총 3400억원에 이르는 IT인프라 토털 아웃소싱 계약을 했다. 일부가 아닌 인프라 전체에 대한 관리, 운영을 통째로 외부에 맡긴다는 것이 결코 쉽지않은 선택이었겠지만 황 부사장은 의외로 담담하게 설명했다.
그는 “IT부서가 비용절감과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먼저 경영진에 아웃소싱을 제안했고, 경영진도 주요 전략과제에 아웃소싱을 포함시켰다”며 “아웃소싱 과정에서 흔히 나타나는 내부 반발이나 우려는 없었다”고 전했다.
그는 가장 민감한 고용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원들과 충분한 사전 협의를 거쳐 부작용을 차단했다. 비용 측면에서는 자체 운영방식 대비 10년간 평균 17% 비용절감이 기대된다.
교보생명의 아웃소싱은 완성형이 아니라 진행형이다. 황 부사장은 인프라에 이어 애플리케이션으로 아웃소싱 범위를 확대하려다 추진작업을 일시 중단한 상태다. 교보생명이 원하는 수준의 애플리케이션 아웃소싱 서비스를 받을 정도로 국내 IT시장이 성숙되지 않았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아웃소싱의 성공은 서비스를 이용하는 기업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 양쪽의 수준이 동일해야 한다”며 “애플리케이션 아웃소싱은 서두르지 않고 추후 타당성을 다시 검토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CIO, 혁신을 부르는 사람=황 부사장을 만난 것은 지난 7일 늦은 오후. 그는 이날 오전 신탁업무 회의를 주재하고, IT부문 분기 결산 및 계획수립 회의를 진행했으며, 이어 오후에는 사옥 리모델링 진행상황 및 디자인 검토에 관한 회의를 하던 중 먼저 일어나 겨우 시간을 낸 터였다.
그의 명함에는 ‘업무지원담당 겸 인력지원실장 겸 신탁팀담당’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말 그대로 ‘멀티플레이어’다.
IT파트 출신이 CIO가 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IT 출신 CIO가 비IT 부문을 아울러 담당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렇기에 그는 CIO의 정의에 새로운 개념을 더한 인물로 꼽힌다.
황 부사장은 “전통적으로 CIO의 I는 ‘인포메이션(Information)’을 뜻하지만 지금의 I는 ‘이노베이션(Innovation)’으로 봐야 한다”며 “CIO는 회사 전체를 횡적인 시각에서 볼 수 있는 ‘크로스 펑션(cross function)’ 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술’에만 몰입하면 좋은 CIO가 될 수 없다”며 “CIO는 CEO의 분신으로서 기업의 경영혁신을 뒷받침하는 경영진의 일원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황 부사장은…CIO는 ‘CEO의 분신으로서, 경영진의 일원으로서 기업의 경영혁신활동을 IT라는 촉매제(enabler)를 통해 주관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경기고와 서울대(전자공학)를 졸업했으며, 대우와 조선일보 IT 부서를 거쳐 지난 1997년부터 교보생명 보험시스템부장, 정보시스템실장, 정보시스템최고책임자(CITO) 등을 역임했다. 지금은 IT를 비롯해 인력지원, 업무지원, 신탁팀담당을 겸하고 있다. ‘순한’ 외모와 달리 대학시절 친구들과 결성한 록밴드에서 드럼을 치며 딥 퍼플, 레드 제플린 등에 빠지기도 했다. 지금은 젊은 시절 가슴을 뜨겁게 했던 하드록보다는 중학교 2학년 막내딸에게서 활기를 찾는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