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내가 운영하는 와인 비스트로에서 사람들이 하는 질문 중 하나가 왜 집에서 와인을 마시면 와인 전문점에 비해 와인 맛이 떨어지느냐는 것이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 집에서 어떤 와인 잔을 쓰는지 물으면 답변들이 궁해진다. 즉 와인에 대해서는 관심이 높지만 실제로 와인을 맛있게 마시는 잔에는 관심이 덜하기 때문이다.
와인 잔은 무색 투명하고 재질이 얇고 가벼운 것이 좋으며 와인의 향을 잘 느끼게 디자인된 게 훌륭한 것이다.
와인 잔 제조업체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스트리아의 리델과 독일의 슈피겔라우가 있다.
300여년 전 보헤미아에서 시작된 리델은 와인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어느날 리델에서 유명한 소믈리에를 초청해 같은 와인을 여러 형태의 와인 잔으로 시음해 가장 좋은 모양을 선정, 소믈리에라는 고급 와인 잔을 탄생시켰는데 와인의 특성에 따라 잔이 달라야 한다는 개념을 도입한 최초의 시도였다.
특히 피노누아 등의 와인을 소믈리에 잔 중 튤립 잔에 따른 후 스월링(와인 잔을 옆으로 흔드는 행위)하면 피노누아의 꽃향기가 향기롭게 피어오르며 불빛에 비친 아름다운 루비 색깔에 로맨틱한 분위기에 빠지게 마련이다.
와인 잔의 두께도 대단히 중요하다. 투박한 잔에 마시기보다는 얇은 잔에 마시면 입술이 착 달라붙는 감에 입안에 떨어지는 와인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혀와 와인의 접촉을 과학적으로 연구해 나온 산물이다.
얇은 잔은 두꺼운 잔보다 잔끼리 부딪쳤을 때 잔의 울림이 너무나 아름답다.
손으로 잔을 잡았을 때의 촉감, 눈으로 바라볼 때의 시각, 코로 향을 맡아보는 후각, 잔을 부딪쳤을 때 울리는 청각, 끝으로 얇은 글라스 잔에서 입으로 흘러들어온 와인 맛을 느끼는 미각 등 오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잔이 훌륭한 와인 잔이다. 며칠 후면 기축년 설(구정)이 다가온다. 어려운 경제가 활짝 피도록 와인 잔을 들고 건배를 해보자. 행복한 오감을 느끼며.
구덕모 와인앤프랜즈 사장 www.wineandfriend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