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경제위기속의 단상

[ET칼럼]경제위기속의 단상

 한 사회가 생성한 지식(개인적 경험이나 암묵지를 포함)의 총량을 산술적으로 계산하는 것이 가능할까. 가령 산업계, 학계, 연구계, 문화계 등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 중인 구성원들이 오랜 시간 축적한 지식들을 계량화해 산술적으로 합하고 빼는 것이 가능하냐는 얘기다. 현실적으로야 불가능하겠지만 얼마든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개념이다. 이러한 산술적 행위가 가능하다면 우리 사회 각 구성원들이 그동안 생성했거나 현재 알고 있는 지식들을 합산해 한 사회가 갖고 있는 지식 또는 경험의 총량을 산출해낼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지식의 총량이 산술적 합계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면 우리 사회는 총체적으로 지식의 진화 과정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사회적인 지식의 총량이 각 구성원들이 갖고 있는 지식과 경험의 산술적 합계에 미달하면 우리 사회는 지식과 경험의 퇴행 과정에 있다고 해도 별 무리가 없다. 예컨대 산업계나 연구계에 오랫동안 몸담았던 인사가 퇴직 후 자신의 전공과 별로 상관없는 자영업에 종사하면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지식의 축적은 힘들다. 사회적 지식의 퇴행과정에 있는 것이다.

 사회적 지식의 총량이 증가하기 위해선 경제발전과 문명의 고도화라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동시에 지식과 경험을 상호 연결해주는 사회적인 그물망도 정상적으로 작동해줘야 한다. 이 같은 조건이 충족될 때 우리 사회의 지식 총량은 증가하게 된다. 구체적으로는 경제가 활성화되고 학계 또는 연구계가 내놓는 산출물의 질은 점차 좋아질 것이다.

 사회적 지식의 진화라는 측면에서 볼 때 최근의 글로벌 경제위기는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졸지에 길거리로 쫓겨난 직장인이 늘어나고, 취업난으로 소중한 시간을 허송하는 젊은층이 증가할수록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지식과 경험의 단절 현상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얼마 전 물리학 박사 과정을 중도에서 포기한 한 젊은이가 환경미화원 공개모집에 응시한 것이 화제가 됐다. 한 자연인이 30여년 넘게 공들여 익힌 지식과 경험이 하루아침에 쓰레기통으로 갈 위기를 맞았다. 그가 높은 수준의 과학지식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해온 우리 사회의 교육시스템에 대한 신뢰도 땅에 떨어졌다.

 산업 현장에서도 ‘지식’은 고난의 행군을 하고 있다. 기능장들이 현장에서 체득한 높은 수준의 기능들과 장인정신은 다음 세대로 전이되지 못하면서 지식과 지식 간에 메우기 힘든 크레바스가 생겨나고 있다. 전방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지식과 경험의 크레바스 현상은 결국 사회적 지식과 경험의 퇴행현상을 부추기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특정 검색어를 쳤을 때 열거되는 검색건수의 많고 적음이 결코 우리 사회의 지식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수는 없다. 콘텐츠 생성 당시의 배경과 맥락은 허공으로 사라진 채 무한 복제와 동어반복만이 사이버 공간을 떠돌고 있다. 이 같은 콘텐츠의 무한 반복 또는 복제 행위는 지식정보화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다. 지적인 영역에서 엔트로피의 법칙이 관철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리에게 창의력 있는 콘텐츠 생산 능력이 있기나 했던 건가. 혹시 있었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퇴화과정에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마저 든다. 경제위기의 심장부를 지나가면서 그나마 축적돼 있던 사회적 지식의 총량마저 까먹고 있는 것 아닌지 걱정스럽다. 경제위기라는 이름 아래 매몰되고 있는 것이 어디 이뿐이겠는가. 주제넘은 말이지만 지금은 주변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인 듯 싶다.

 장길수 CIO BIZ+ 팀장 ks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