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디지털TV 전환 `4개월 연기` 될까

  미국의 디지털TV 전환이 당초 예정보다 4개월 늦춰질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미국 통신업계가 울상을 짓고 있다. 디지털 전환으로 남는 아날로그 주파수를 거액에 사들였다가 일정 지연으로 추가비용 투입과 마케팅 차질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미 상원 의회는 지난 26일(현지시각) 내달 17일 디지털TV 환경으로의 전면 전환을 6월로 미루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표결은 디지털 컨버터 박스 보급 등 준비 작업이 미흡하다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인수팀의 의견에 상원이 발 빠르게 움직인 것이다.

아직 하원 통과 절차가 남아 있지만 이해관계가 얽힌 현지 통신업체들은 유탄을 맞을까 전전긍긍했다.

디지털 전환 직후인 2월 18일부터 방송사들로부터 넘겨받은 주파수로 모바일 방송 서비스인 ‘미디어플로(MediaFLO)’ 확대를 꾀했던 퀄컴은 큰 타격을 우려했다. 퀄컴은 연방통신위원회(FCC)의 아날로그 주파수 경매에 5억5000만달러를 쏟아부었으며 미디어플로 장비 구입에도 적지 않은 추가 비용을 투자했다.

렌 라우어 퀄컴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전환 일정이 지연되면 수억달러의 추가 비용 발생과 매출 감소가 예상된다”며 즉각 반발했다. 이에 앞서 폴 제이콥스 퀄컴 CEO도 의회에 서한을 보내 예정대로 전환을 추진할 것을 요청했다.

주파수 경매에서 총 160억달러에 아날로그 주파수를 사들여 차세대 무선 네트워크로 활용할 예정인 AT&T, 버라이즌 등 통신사업자도 바짝 긴장했다.

이들 이통사는 퀄컴과 달리 즉각 서비스를 실시할 계획은 없지만 일정 지연에 따른 예기치 못한 전략 수정에 대비해야 할 형편이다.

미 정부는 이번 연기 추진에 앞서 지난 2006년 12월 31일로 잡혀 있던 디지털TV 전환 시점을 디지털TV 수신기 보급률 미달을 이유로 2009년 2월 17일로 미룬 바 있다.

미 무선통신협회(CTIA) 측은 “디지털 전환 연기는 FCC의 주파수 경매 제도의 신뢰성에도 타격을 입힐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상원을 통과한 법안에는 정부가 추가로 디지털 컨버터 박스 교환용 쿠폰을 발행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외신은 미 정부가 이달 초 쿠폰을 소진했으며 250만명의 시민이 추가 지급을 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존 록펠러 미 상원의원은 “미국은 아직 전환 준비가 덜 됐으며 이를 연기하는 것이 새 행정부가 올바른 정책을 펼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부여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김유경기자 yukyung@etnews.co.kr

◆국내업계 반응

 미 통신업체와 달리 우리나라 TV 업체는 디지털 전환의 연기에도 별 다른 영향이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어느 정도 예고됐던 일인데다 이미 일정 부분 특수를 누렸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가뜩이나 수요 전망이 우울한 상황에서 분위기까지 가라앉힐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 TV 업체는 현지 수요 동향을 세밀하게 점검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디지털 전환은 이미 예고된 상황이며 소비자도 디지털로 전환되는 현실을 잘 알고 있다”면서 “전체 수요가 다소 미뤄지겠지만 우리나라 업체는 주로 디지털TV에 주력했기 때문에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분석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국내 업체는 인버터를 셋톱 박스 형태로 공급해 왔으나 지난해 발표 전후로 해서 약간의 특수를 본 상황이다.

 LG전자 관계자 역시 “정부 보조금 지원에 따른 인버터 시장은 주력시장이 아니다”면서도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겠지만 매출 목표와 마케팅, 프로모션까지 영향을 받을 정도는 아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주로 소매 유통 채널에 주력하고 있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