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와이브로 주파수 대역폭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은 더 늦기 전에 해외 시장과 호환성을 확보해 우리나라 와이브로산업의 고립을 막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대역폭 변경은 관련 표준 규격의 변화로 이어져 구축됐거나 개발한 장비를 일부라도 교체해야 한다. 정부로서는 정책 변경의 ‘부담’을 피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시장과 동조 없이 와이브로의 ‘파이’를 키우는 데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 여전히 설득력을 얻고 있다. 관련 업계도 전환이 가져올 변화를 놓고 주판알을 두드리는 상황이다.
◇방통위의 부담=방통위가 대역폭 전환의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은 와이브로사업자의 반발이 예상되는데다 정책 정책이 오락가락한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수천억원씩 투자한 사업자들로선 기존 구축 장비를 제대로 써먹어 보지도 못하고 시스템을 바꿔야 해 이중의 투자 부담이 생긴다. 시스템 변경으로 인해 망 구축 확대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이에 대해 방통위 한 관계자는 “부담이 따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책결정을 미루면 ‘가래로 막을 일을 호미로 막는 꼴’이 돼 버릴 수 있다”고 말했다.
◇업계 시각=와이브로사업자와 장비업체들은 ‘파이’가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는 수긍하면서도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KT와 SK텔레콤 관계자들은 “아직 방통위로부터 어떤 이야기도 듣지 못했고 대역폭 변경에 따른 변화도 검토하지 못한 상황”이라며 언급을 피했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서비스업계 한 관계자는 “이미 고도제한에 묶여 8층짜리 건물을 지은 상황에서 고도제한을 풀어줄 테니 10층짜리 건물을 지으라고 하면 황당하지 않겠느냐”며 “어떤 결정이 내려질지 모르지만 이미 투자에 들어간 서비스업체로서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또 다른 관계자는 “대역폭이 해외시장과 같아지면 서비스사업자는 장비·단말기의 소싱을 글로벌하게 진행할 수 있어 단가 인하와 품질 향상을 꾀할 수 있을 것”이라며 “가입자가 획기적으로 늘어날 수만 있다면 사업자도 장기적으로 나쁠 게 없다”고 말했다.
장비업계의 시각도 갈린다. 단기적으로는 해외 업체와 경쟁해야 하는 부담이 생기지만, 장기적으로는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장비업체는 우리나라만이 8.75㎒ 대역폭을 쓰기 때문에 해외업체와 경쟁 없이 사실상 내수 독점 공급 구조로 유지할 수 있었다. 대역폭이 해외규격과 같아지면 글로벌경쟁이 불가피하다. 장기적으로는 국내에서 축적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해외시장 공략이 가능해져 세계시장에 빠르게 파고들 수 있는 기반을 만들 수 있다.
방통위는 사업자와 장비업체 등 이해당사자와 전문가들로부터 의견 수렴을 거쳐 정책 방향을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결정이 더 어려워지기 때문에 결론을 내리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을 전망이다.
심규호기자 khs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