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이후 중소·벤처기업이 설비 투자보다 운전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정부 정책 자금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중소기업의 유동성 문제가 심각해졌다는 방증이지만 경제회생 핵심 동력인 중소·벤처기업이 투자를 제때 하지 못하면서 경기 회복기에 경쟁력이 뒷걸음질할 것이라는 우려가 증폭됐다.
1일 정부 정책자금 집행기관인 중소기업진흥공단과 기술보증기금의 지난해 이후 월별 정책자금집행 실적 추이에 따르면 운전자금 수요는 꾸준히 늘고 있는 반면에 투자용 자금인 시설자금을 찾는 기업은 급격히 줄고 있다. 운전자금은 인건비 등 일회성 경비, 시설자금은 내구성 있는 장비 또는 시설 도입을 위한 말 그대로 투자자금을 일컫는다.
운전자금 위주의 정책자금 집행은 미국발 경기 침체가 본격화한 지난해 4분기 이후 극도로 심화됐다. 중진공 정책자금은 지난해 1∼10월만 해도 시설자금 수요가 61.9%로 운전자금(38.1%) 이용비율을 크게 앞섰다. 그러나 11월 시설자금 수요가 56.7%(운전자금 43.3%)로 꺾인 이후 12월에는 35.8%(운전자금 64.2%)로 급락했다. 중진공은 운전자금 지원비율이 절반을 넘은 것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추세는 올해 들어 더욱 심화돼 1월 시설자금 대출은 21.5%(운전자금78.5%)까지 하락했다. 작년 1∼10월과 비교해서는 시설자금 대출 비중이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기술보증기금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3분기까지 운전자금 보증지원이 70.1%였으나 이후 4분기인 10월(82.5%), 11월(83.2%), 12월(89.8%)에는 크게 늘었다. 경기가 좋던 지난해 7월 시설자금 보증지원이 40%까지 올라갔으나 12월에는 10.2%까지 내려앉았다. 정부는 이 같은 운전자금 수요를 반영, 지난해 말 유례없이 올해 운전자금 대출을 지난해 38%에서 60%로 늘려놓은 상태다.
정윤모 중기청 경영지원국장은 “지금 우선적인 정책 목적은 일시적 유동성 애로를 겪고 있는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것”이라며 “정책자금이 운전자금 위주로 가는 것은 아니며 경기가 회복 기미를 보이면 다시 시설자금 위주로 돌아설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해 ‘2009년 글로벌 기업경영 8대 이슈’ 보고서에서 “글로벌기업 간 생존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취약한 혁신형 중소기업 위상은 크게 축소될 것”이라며 “IT·BT 등 기술집약산업의 혁신을 주도해왔던 벤처기업의 생동력이 글로벌 유동성 위기를 맞아 급격히 저하되는 조짐”이라고 경고했다.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 기획조정실장도 “일본이 잃어버린 10년 속에서도 IT 분야에서 강점을 보이는 것은 꾸준한 기술투자 결과”라며 “강점을 지닌 분야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준배기자 jo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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