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예술에서 로봇이 주인공으로 선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쉽게 수긍되지 않는다. 로봇은 관객과 소통에서 중요한 요소인 감정 표현을 원활하게 할 수 없을 것이라는 편견 때문이다. 김동언 경희대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 교수는 로봇 에버와 함께 이런 편견을 깨는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 오는 18일 남산 국립극장에서 에버를 주인공으로 한 창극의 총감독으로 나선 것이다.
김동언 교수는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로봇에 대한 상상을 해봤을 것”이라며 “무대에서 로봇은 단순한 과학 기술의 결정체가 아닌 새로운 생명체가 된다”고 설명했다.
무대라는 허구의 현실 속에서 관객은 인간과 같은 로봇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로봇이 될 수 없고, 로봇 또한 인간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며 극에 몰입할 수 있다는 뜻이다. 김 교수가 연출하는 무대에서 에버는 판소리를 배우고 싶은 로봇으로 한복을 입고 등장한다. 또 다른 로봇 ‘세로피’는 에버의 훼방꾼이다. 가야금 연주가 황병기 선생이 에버의 데뷔 무대에서 연주를 맡게 되는 것 또한 주목된다. 오래된 전통을 지닌 국악과 첨단 과학 기술이 한 무대에 어우러지는 셈이다.
김 교수는 “반드시 대화가 아니더라도 무대 연출은 몸짓 등 다른 요소가 포함되므로 로봇은 새로운 가능성도 품고 있다”고 부연했다. 로봇의 기술적 한계 때문에 아직까지는 무대 연출에서 표현이 제한되는 부분은 연출자로서 아쉬운 점이다. 하지만 김 교수는 “사전에 과학자들과 충분히 협의해 포기할 것을 포기하고 나면 착오는 줄어든다”고 대답했다.
또, 앞으로 예술가와 과학자의 협업이 서로에게 자극을 줘 현재를 뛰어넘는 새로운 로봇이 나타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성대를 가진 로봇이라던가, 눈물을 흘리는 로봇과 같이 예술가의 끊임없는 요구가 과학 발전에 중요한 자극이 될 것입니다.”
김동언 교수는 이질적으로 보이는 과학과 예술이 융합의 가능성을 높이 사고 있다. 그는 “과학과 예술의 어원은 하나인데, 사회의 발전에 따라 분화됐다가 이제 다시 만나는 접점에 있다”며 “학문 간 통섭(通涉)이 주목받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사회의 이분법적인 사고 방식 때문에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그는 예술가와 과학자의 소통이 쉬운 지점이 존재한다고 강조한다.
“과학과 예술 둘 다 특징이 판타지를 기반으로 하고, 다른 점을 존중하고 배려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앞으로 새로운 시도가 많아지면 더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겠죠.”
가장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드러나는 무대 예술이지만 과학 기술의 발전 없이는 지금과 같은 진보를 이룰 수 없다는 게 김 교수의 생각이고, 앞으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백남준 선생이 쓴 책에 보면 앞으로 예술은 반도체 칩, IT 기기에 들어가 새로운 모습을 띨 것이라는 대목이 나오는 데 그 말에 동감한다”고 말했다.
김동언 교수는 “국내외 사례를 조사하면서 로봇을 배우로 세운 사례는 거의 최초라고 생각되지만 ‘최초’라는 말에 연연하기보다는 배우로서 로봇의 가능성을 본다는 데 더 의의를 두고 싶다”고 대답했다.
이수운기자 per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