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에 빠진 `국가재난통신망 구축`

 #2003년 2월 18일 오전 9시 53분경 대구시 중구 성내동 중앙로역 구내.

 50대 남자가 휘발유에 불을 붙여 바닥에 던져 12량의 지하철 객차가 모두 불에 탔다. 192명의 생명을 잃었고 148명이 부상당한 대형 참사였다.

 당시 사건이 더 큰 충격을 준 것은 열차간 통신이 불가능해 맞은편에서 오는 1080호 열차까지 피해가 확산됐다는 점이다. IT강국 한국에서 일어난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당시 국무회의에서 국가 기관 간 무선통신망 통합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제기됐고, 정통부 및 산하 관련 기구 12개 기구가 모여 통합망 구축 논의를 시작했다.

 하지만 6년이 지난 현재도 통합망 구축은 마무리되지 않았다.

 대구지하철 참사 6주기를 계기로 아직도 갈지자 행보를 거듭하고 있는 국가 재난통신망 구축 상황을 들여다 봤다.

 ◇필요성에도 불구, 사업은 ‘전면 중단’=정통부와 12개 산하기관은 당시 엡코(미국식), 아이덴(모토로라 독자기술), 테트라(유럽식) 등을 검토해 주파수 효율성 및 해외 구축사례를 고려해 테트라 규격을 국가통합망 기술로 채택했다.

 참사 발발 1년이 훨씬 지난 2004년 6월 소방방재청은 기존의 경찰 주파수공용통신(TRS)망을 기본으로 통합망 사업에 착수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보고서에 따른 결정이었다.

 하지만 경찰망은 모토로라가 구축한 TRS라는 점에서 특정기업의 정부 통합망 독점이라는 이슈가 발생했다.

 시스템간 이기종 호환이 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결국 모토로라의 시스템 독점, 국가사업에 대한 유효경쟁체제의 부재는 진행 중이던 통합망 사업을 다시 감사원이 감사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이미 국가통합망 1차 사업에 1600억원을 투입, 서울·경기 지역 시스템 구축이 완료된 상황에서 일어난 일이다.

 결국 2007년 감사원의 지적으로 통합망 사업은 전면 중단됐다.

 올해 예산에도 통합망 구축 관련 예산은 배정되지 않아 더 이상의 사업 진행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부작용 속출=현재 서울·경기지역에 공급된 디지털 테트라 무전기는 약 2만대. 내구연한이 아직 남아있어 교체의 문제는 없지만 단말기가 추가로 필요할 경우 발주가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2002년 시스템을 구축한 대전, 대구, 부산, 광주지방경찰청은 이미 내구연한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소방방재청에서 국가통합망 필요기관으로 지정된 1140여 기관에 포함된 다른 기관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산림청, 소방업무 일부가 업무의 특성에 따라 아날로그 무전기를 여전히 쓰고 있으며 국립의료원은 국가통합망이 구축된다고 하여 구급차 관리 등에 사용하던 기존 아날로그 망을 걷어낸 상태다. 군도 합참에서 테트라 기반의 무선 전술망 구축을 진행하다 보류한 상황이다.

 인천지하철 2호선은 첨단 디지털방식이 아닌 아날로그 VHF로 새로운 장비 도입을 결정했고, 부산지하철 1호선은 사용기간이 20년이 지난 VHF 장비를 교체하지 못하고 있다.

 각 기관들의 수요 현황에 따라 독자 자가망 구축을 진행할지, 국가통합망 사업 재개를 결정할지에 대한 정부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실적 대안 마련 시급=유럽표준인 테트라는 현재 상호 다른 장비간 연동성 테스트가 상당부분 진행됐다. 아직까지 시스템 구조가 달라 만족할 만한 수준의 연동이 구현되지 않고 있지만, 연동에 대한 기술적 문제는 극복이 가능한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

 당초 문제가 됐던 단일 기업에 의한 독점 문제에 대한 해결이 가능해진 셈이다. 또 국내 업체가 테트라 단말기도 개발, 국내 업체의 사업 참여기회도 늘어났다. 또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등 국책연구기관에서도 해결 가능한 방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당초 제기됐던 긴급 재난통신망에 대한 필요성과 중복투자 방지 등의 현실적 문제들을 다시 한 번 심도깊게 검토, 사업 방향에 대한 신속한 의사 결정을 내려야 제2의 대구지하철 참사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