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OBIZ+]빅3 조선업체 IT 투자전략

국내 대표 효자산업인 조선업에도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한 칼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이미 3년분 이상의 일감을 확보해 놓은 대형 조선소에도 선박 주문이 취소되거나 인도 시기를 늦춰달라는 등 달갑지 않은 소식이 들려온다. 국내 중소형 조선소들은 이미 퇴출과 구조조정이라는 위기감 속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우리나라만 어려운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세계 경제 위기로 중국과 일본 역시 크게 고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지금이 세계 1위의 조선강국인 한국의 위력을 드높일 수 있는 기회라고 말한다. 조선IT가 뒷받침해 준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얘기다.

 2001년 최대 경쟁국이었던 일본을 추월할 수 있었던 것도 첨단 IT를 십분 활용했기 때문이다. 중국이 무서운 기세로 우리나라를 쫓아오고 있지만 쉽사리 1위 자리를 넘볼 수 없는 것도 수십년간 쌓아온 국내 산업의 IT경쟁력이 원인이 됐다. 그만큼 조선산업에서 IT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올해도 대형 조선소의 IT투자는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특히 1세대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업그레이드해 고도화하는 작업이 중점적으로 추진될 예정이다. 여기에 정부가 융합 조선IT 개발에 적극적인 지원 의사를 밝힘에 따라 올해 조선IT 경쟁력은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첨단 IT로 무장한 ‘빅3’ 조선소=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의 조선업계 빅3가 조선소 전체를 IT로 무장하고 있다. 이른바 ‘디지털 십 빌딩’이라는 환경을 조성 중이다. IT를 활용 배를 만드는 과정을 전면 자동화하는 것이다. IT분야에 속하는 대부분의 기술을 총망라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조선IT시스템의 꽃’이라고 불리는 3차원(3D) 설계시스템을 비롯해 RFID기반 관리시스템, USN 기반 산업안전관제 시스템, 자동운항제어기기, 무선통신, 원격감시시스템, 극한 파랑 중 정위치 유지제어시스템 등 모든 시스템이 IT라는 옷을 입고 있다.

 경영지원과 협업 분야에도 IT의 물결은 거세다. 전사적 자원관리(ERP), 지식경영시스템(KMS), 비즈니스프로세스관리(BPM), 공급망관리(SCM), 통합커뮤니케이션(UC) 등이 속속 도입되고 있는 것.

 제조산업의 특성상 로봇의 활용도는 매우 높다. 반드시 사람이 작업해야 하는 정밀영역을 제외하고 용접로봇이나 도장로봇 등이 활용되는 분야가 많다. 실제 대우조선해양은 절단 공정의 90% 이상을 로봇이 처리하고 있다. 삼성중공업도 로봇이 처리하는 공정 자동화율이 65%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완 서울대학교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우리나라가 조선강국으로 자리 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뛰어난 생산기술과 설계기술 때문”이라며 “IT는 설계자와 생산자가 더욱 효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국내 조선소, 설계환경 고도화에 주력 =조선IT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설계시스템인 조선CAD다. 조선CAD기술은 국내 조선소들과 함께 성장해왔다. 일반적인 설계시스템과 비교했을 때 정밀도나 생산성 측면에서 더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 국내에 도입된 차세대 조선CAD는 영국 아비바의 ‘아비바마린’과 인터그라프의 ‘스마트마린’이 대표적이다. ‘아비바마린’은 플랜트 전용CAD인 PDMS와 트라이본을 기반으로 개발된 것으로, 국내에서 인지도가 높다. 인터그라프의 ‘스마트마린’은 삼성중공업 등이 참여해 만든 ‘GS-CAD’라는 조선 전용 CAD의 후속제품으로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산업에 맞도록 설계됐기 때문에 조선CAD 분야에서 명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국내 조선소들은 매년 설계환경을 고도화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통합 CAD 환경 구현과 3D 설계 시스템으로 발빠르게 전환할 태세다. 통합 CAD 환경 구현은 조선소 내부에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는 CAD 시스템을 단일 제품으로만 통합하는 작업이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진행해 왔으며 대부분 대형 조선사들이 현재 마무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완벽하게 통합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3D 설계시스템으로의 전환 이슈도 올해 관심사다. 삼성중공업은 가장 먼저 3D 기반 설계시스템을 적용,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현대중공업은 최근 아비바마린을 선택해 3D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으며, 대우조선해양도 현재 사용하고 있는 2.5D 수준의 설계시스템을 3D로 전환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중견 및 중소 조선소들도 3D 설계시스템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다.

 사실 조선CAD 분야는 외산 솔루션의 독무대라고 할 수 있다. 조선업계 일각에서 한국형 조선CAD를 연구하고 개발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기는 하다. 완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힘들더라도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기술력만 갖춘다면 외산 설계 시스템의 가격 불공정을 해소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김태완 서울대 교수는 “외산 솔루션 수준으로 가능성만을 보여줘도 가격을 낮추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CAD와 PLM을 꾸준히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IT의 중추시스템, ERP=설계시스템으로 생성하는 생산정보는 ERP를 거쳐 체계화, 생산현장에 제공된다. ERP는 설계에서 생성된 생산정보를 왜곡 없이 반영해 자재의 물량을 정확하게 관리할 수 있도록 해준다.

 국내 대형 조선소들은 2001년부터 ERP 도입을 추진해 지금은 안정화 단계에 이르렀다. 빅3 모두 SAP·ERP 시스템을 도입했고, STX 조선과 SLS 조선은 오라클 ERP를 구축했다.

 제일 먼저 ERP를 도입한 곳은 대우조선해양. 물론 시행착오도 많았다. 하지만 2004년 8월 전 세계 조선소 가운데 처음으로 시스템을 개통했다. 이어 현대중공업이 시스템 구축에 들어가 안정화 단계에 진입했고, 삼성중공업은 작년에 오픈했다.

 이호신 SAP코리아 산업솔루션본부 상무는 “일반적으로 3개월이면 ERP시스템이 안정화에 접어드는데, 조선소는 워낙 규모가 크고 복잡하기 때문에 평균 3년 정도의 기간이 걸렸다”며 “1년에 150척 이상의 배들이 동시에 건조되는 환경에서도 ERP가 엄청난 데이터를 관리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도입 6년 만에 SAP ‘넷위버’ 기반으로 ERP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는 대규모 작업을 진행했다. 성능이 두 배 이상 빨라졌으며, 더욱 안정적인 운영환경을 구축했다. 특히 통합 그룹웨어 포털을 구축, 포털의 성능을 개선했고 UI 개선 및 그룹웨어의 통합을 통해 서비스와 안정성을 높였다.

 2006년 ERP를 오픈한 현대중공업은 부분적인 업그레이드를 진행하면서 전 사적인 업그레이드 계획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CAD와 ERP의 연결 통로, PLM=올해 국내 대형 조선소의 핫 이슈는 선박생애주기관리시스템(PLM) 도입 여부다. 국내 조선소들은 CAD와 ERP시스템의 활용이 성숙단계에 접어든만큼 올해는 PLM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조선PLM의 도입을 통해 조선영업, 설계, 생산, 운항, 유지보수, 검사, 폐선에 이르는 생애주기 전반 정보를 통합 관리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겠다는 복안이다.

 김태완 서울대학교 교수는 “조선소들이 생산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ERP를 구축했다면 PLM은 설계의 혁신을 위해 구축되는 것”이라며 “설계업무 중 비도면 업무를 간소화해 설계공수를 줄이고, 설계로부터 생성되는 정보를 타 시스템에서 이용하더라도 데이터의 일관성을 유지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현대중공업은 세계 최초로 조선전용 PLM을 구축하고 있다. LG CNS·지멘스PLM소프트웨어코리아와 함께 내년까지 두 단계에 걸쳐 PLM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인데, 현재 1차 개발작업을 진행 중이다.

 대우조선해양도 IT융합 국책과제로 조선PLM 개발사업을 제안한 상태인데 이달 결정될 예정이다. 삼성중공업은 기존 CAD 시스템에서 PLM 관련 기능들을 많은 부분 커버하고 있어 조금 더 지켜보겠다는 생각이다.

 최동철 대우정보시스템 제조서비스팀 부장은 “선박 생산에 필요한 기본적인 정보는 대부분 설계 과정에서 만들어지는데, 조선산업의 특성상 설계와 생산이 동시에 진행됨에 따라 변경 데이터가 아주 많다”며 “변경된 설계 정보가 생산에 즉시 적용돼야 하기 때문에 PLM 솔루션은 체계적이면서 유연한 구조를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조선업계의 새로운 화두 ‘협업’=올해 대형 조선사의 눈에 띄는 IT전략 중 하나가 협업시스템 구축이다. 조선업체 중 상당수가 조선소 내에서만 생산하던 블록과 부품을 많은 부분 아웃소싱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블록을 만드는 과정은 모두 아웃소싱으로 처리하고, 블록을 탑재하는 과정부터 선박을 인도하는 과정만을 수행하는 중형 조선소들이 늘고 있는 추세다. 이런 방식은 원가절감과 생산시설을 효과적으로 이용하게 됨으로써 경쟁력을 높이는 주요 요인이 됐지만 상대적으로 물류가 복잡해졌다.

 자연스럽게 블록제작 협력사와 부품을 납품하는 부품협력사까지 유기적으로 통합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대형 조선사를 중심으로 물류 흐름을 안정화하려는 노력이 활기를 띠면서 협업 시스템의 구축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2007년부터 협력사와 협업 환경 프로세스 개선에 주력해왔으며, 올 하반기 협업시스템 구축 관련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면 매년 56억원 이상의 생산 비용 절감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성환 대우조성해양 이사는 “협업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를 통해 협력사 적기 납기율이 기존 70%에서 지난해 85%까지 향상됐다”며 “생산성 향상은 물론이고 선박 건조기간 단축 및 비용절감 등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대형-중소 조선소 간 IT투자 여력 차이 커=세계적인 경기 불황의 여파로 조선소들의 수주가 급감하고 IT투자도 위축되고 있다. 하지만 국내 대형 조선소들은 장기적인 비전하에 올해도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황규옥 삼성중공업 그룹장은 “지난해와 비교해 IT투자 비용에 큰 변동은 없다”며 “공장, 사업장이 계속 늘어남에 따라 시스템에 대한 투자 역시 계속 이뤄질 것이며, 장기적으로 진행되는 것도 차질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체계적인 정보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중소형 조선소들은 사정이 다르다. 원가절감과 경쟁력 향상을 위해 IT투자가 필요하지만 문제는 투자 여력이다.

 이호신 SAP코리아 상무는 “실질적으로 중소 조선소와 대형 조선소의 관심과 요구사항은 같다”며 “중요한 것은 투자 여력이 있느냐, 없느냐다. 지금과 같은 시기에 정부가 나서서 중소 조선소가 ERP와 같은 시스템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STX조선을 비롯해 성동조선해양, 한진중공업 등 중견 조선소가 경기침체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올해 신규 투자는 모두 연기된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동철 대우정보시스템 부장은 “정보화가 경쟁력을 높이는 주요 요소라는 것은 초대형 조선소의 성장과정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며 “중형 조선소는 정보화 과정을 통해 업무 체계를 효율화하고 안정화함으로서 불필요한 낭비 요소를 줄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많은 분야에서 정보화를 완성한 대형 조선소가 최근에 아웃소싱 협력사와의 협업생산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만큼 협업생산 분야에서 정보화에 진전을 이룬다면 경쟁력을 한층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