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은행권의 IT전략은 그야말로 ‘정중동(靜中動)’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국내 은행권은 비상경영에 들어간 상태다. 따라서 대부분의 은행은 신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보다는 지난해 착수한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현재 은행을 둘러싼 환경이 급변하고 있어 IT전략이 언제 바뀔지 모른다. 무엇보다도 민영화 등 이슈가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지주사 출범도 IT전략을 변화시킬 수 있는 요인으로 현재 잠복 상태다.
은행권의 IT전략을 변화시킬 수 있는 최대 이슈는 역시 민영화 문제다. 정부는 당초 우리금융지주 계열 금융기관을 비롯해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산업은행 등을 민영화할 계획이었다. 민영화 방안을 놓고 현재 다양한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다. 우선 우리금융지주의 우리은행과 기업은행, 산업은행을 하나로 묶는 메가뱅크 설립 방안이 있다. 우리금융지주의 우리은행, 경남은행, 광주은행을 모두 분리 매각하는 방안도 논의될 수 있다. 기업은행과 우리은행을 묶어 매각하는 방안도 검토 대상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지금은 소강상태지만 하반기에는 본격적으로 민영화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민영화가 추진될 때 가장 큰 IT전략 변화를 일으키는 시나리오는 다른 은행에 인수합병(M&A)되는 상황이다. 우리금융지주 계열 은행인 우리은행·경남은행·광주은행이 국내 다른 은행에 매각되면 매우 복잡한 IT전략의 변화가 예상된다.
우선 현재 토털 IT아웃소싱을 하고 있는 우리금융정보시스템의 역할 재정립이 불가피하다. 당장 아웃소싱 체계를 바꿀 수는 없지만 장기적으로는 단순 시스템관리(SM)업체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 경남·광주은행도 마찬가지다. 때에 따라서는 우리금융정보시스템과의 관계가 끊어진다.
이와 함께 인수된 은행과의 시스템 통합 작업도 뜨거운 감자다. 과거처럼 빅뱅 방식으로 시스템을 통합하는 사례는 더 이상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이러한 예측은 민영화 은행끼리 뭉쳐 메가뱅크를 만든다고 해도 동일하다. 다만 외국계 은행이 인수한다면 단기 및 중기적으로는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한국씨티은행과 SC제일은행처럼 본사의 글로벌 표준 전략에 따라 내부 IT전략이 장기적으로 큰 변화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은 다른 은행에 비해 민영화에 따른 IT전략 변화가 비교적 구체화된 상태다. 이미 컨설팅 사업자까지 선정했다. 산업은행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한국산업은행법이 통과되면 본격적으로 컨설팅에 착수할 예정이다. 산업은행은 민영화가 이뤄지게 되면 산업은행지주회사가 설립되고, 기존 은행은 기업투자은행(CIB)과 한국정책금융공사(KPBC)로 나뉜다. 지주회사에는 산은캐피탈, 대우증권 등이 편입된다. 산업은행은 이번 컨설팅이 완료되면 지주회사 IT통합운영전략을 본격 수립할 예정이다.
민영화는 아니지만 오랜 기간 매각 논의를 진행해 온 외환은행도 실제로 매각이 이뤄지게 되면 큰 폭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외환은행도 국내 은행이 매입하면 상황이 매우 복잡하다. 다만 외국계 은행이 인수할 때에는 단기적으로 현 IT전략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지주회사 출범도 뜨거운 이슈다. 은행권에선 과거 우리금융지주 출범 이후 신한·하나·KB까지 총 4개의 금융지주가 출범했다. 농협도 지난해 말 개혁을 단행하면서 금융지주 체제로 개편했다. 산은, SC제일은행 등은 지주사 출범을 검토 중이다.
지주사가 출범할 경우 IT조직에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금융지주는 출범 당시 우리은행 등의 IT인력을 모아 IT자회사인 우리금융정보시스템을 설립했다. 현재 하나금융지주가 계열 금융기관의 IT인력을 하나INS로 모으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 작업이 완료되면, 하나INS도 하나금융지주의 IT셰어드서비스센터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아직 IT통합을 추진하지 못한 신한금융지주와 KB금융지주도 이러한 방안을 고민 중이다. 특히 신한금융지주는 최근 신한데이타시스템을 실무 주체로 일본 등 해외의 금융그룹 IT자회사 운영방안을 검토 중이다. 아직 KB금융지주는 이렇다 할 지주IT전략을 마련하고 있지 못하지만, 향후 밑그림을 그리기 위해 컨설팅을 받을 예정이다.
이 밖에 농협, 산업은행, SC제일은행도 지주사 출범에 따라 IT전략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산업은행과 SC제일은행은 각각 토털 IT아웃소싱을 수행하고 있어 IT조직 상에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농협도 IT분사라는 조직에 대부분의 IT인력이 들어와 있는 상태여서 조직 상의 큰 틀의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신혜권 CIO BIZ+팀 기자 hk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