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中企 사업수주 원천봉쇄

개정된 행안부 `지자체 입찰 평가방식` 논란

 정부가 기술평가의 변별력을 거의 없애는 쪽으로 지방자치단체 입찰의 평가 방식을 바꾸면서 기술력이 우수한 중소기업의 사업 수주를 원천 봉쇄하고 있다. 가뜩이나 대기업에 비해 수주 가능성이 낮은 중소기업의 설자리를 없내는 것은 물론이고 정부가 출혈 덤핑 경쟁만 부채질한다는 비판이 증폭됐다.

 1일 행정안전부와 업계에 따르면 행안부가 지난 1월 30일 예규 214호로 고지한 ‘지자체 입찰시 낙찰자 결정기준’ 가운데 그동안 제한을 두지 않았던 기술평가의 주관적 평가 배점을 1점 차이로 제한하는 내용의 ‘협상에 의한 계약 체결기준’을 개정안으로 마련, 대기업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개정됐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지자체 입찰평가 방식은 기술능력 평가(80점)와 가격 평가(20점)로 이뤄지는데, 기술능력 평가시 △기술지식 능력·사업계획 등에 관한 ‘주관적 평가(60점)’는 배점 차이를 1점으로 제한하고 수행 실적·신인도 등으로 평가하는 ‘객관적 평가(20점)’는 배점에 제한을 두지 않도록 한 것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주관적 평가 점수 차이의 제한이 없으면) 평가위원 중 한 명만 점수를 높게 줘도 그 업체가 사업을 수주한다”며 “객관적 평가 비중을 높여 공정성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주관적 평가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라면 평가위원의 공정성을 높이는 게 우선이라는 지적이 높다. 정모씨는 행안부 홈페이지를 통해 “평가위원 선정 잡음 때문이라면 행안부가 평가위원 인력 풀을 구축해 지자체에서 활용하는 환경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대기업이라는 배경만으로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는 신인도·재무 상황·입찰 실적 등 항목의 평점 차이에 관한 기준이 제시되지 않아 사실상 이 항목서 당락을 좌우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중소 정보기술(IT)업계는 중앙부처사업에 비해 규모가 작아 그나마 중소기업의 수주 가능성이 큰 지자체사업마저 대기업 위주로 진행될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해당 예규를 게재한 행안부 홈페이지에 여러 건의 항의성 댓글이 달렸다.

 중소기업 A사 대표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대기업에 비해 실적과 신인도는 떨어지지만 우수한 역량을 지닌 중소기업의 가치를 정부가 인정하지 않았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이번 개정이 업체간 출혈경쟁을 야기해 수익성 악화를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주관적 평가의 변별력이 떨어지다보니 점수를 만회하려는 중소기업은 제안가격을 내릴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제살깎아먹기식 가격 경쟁을 낳을 공산이 크다.

 조달청 역시 개정안 중 일부가 국가조달입찰 원칙과 상이하다고 보고 행안부에 검토 의견을 전달했다. 이에 따라 관련 예규의 효력이 발생한 2월 이후 조달청을 통해 이에 근거한 입찰이 한 건도 나오지 않았다. 정부의 조기 발주 방침과 달리 지자체사업은 행정적인 문제로 인해 오히려 지연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김장회 행안부 회계공기업과장은 “객관성을 높인다는 당초 취지와 달리 여러 이견이 접수됐다”며 “각계 의견을 수렴해 개정안 수정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