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대한민국 디지털뉴딜`

 ‘300억달러(45조원), 3조엔(48조원), 5000억원.’

 미국·일본·한국이 경제위기를 맞아 정보기술(IT) 경기부양을 위해 투입하기로 한 이른바 ‘디지털 뉴딜’ 예산을 차례대로 열거한 수치다.

 한국의 추가경정 예산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미국·일본이 무려 90배나 많은 규모다. 똑같은 경제위기 앞에 미국과 일본이 대대적인 IT산업 부양에 나선 반면에 IT강국을 자부해온 한국은 정작 IT산업을 홀대하는 셈이다. 우리보다 후발주자인 중국도 140조원 안팎을 투입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정책이 현실화되면 2∼3년이 지나 경제위기가 끝난 뒤 한국은 미래 성장동력에서 경쟁국에 크게 뒤처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 단기처방에 ‘급급’=미국과 일본이 ‘디지털 뉴딜’에 적극적인 이유는 당장 질 좋은 일자리 창출효과가 큰데다 향후 미래 성장 기반까지 마련할 수 있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48조원에 이르는 거금을 IT분야에만 쏟아부으려면 중복 투자될 여지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개년 긴급계획’ 등의 타이틀을 붙여 투자에 인색하지 않은 것은 미래 투자가치가 그만큼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반면에 재정부가 이번 추가경정 예산을 편성하면서 유독 IT분야에만 인색한 것은 미래가치를 생각하지 않은 기계적인 예산절감이나 사업 타당성 논리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행정안전부의 한 공무원은 “재정부가 수립 중인 현 추가경정 예산은 한마디로 잣대가 단기적으로 일자리 창출효과가 얼마나 크고 구체적인 실행계획이 있느냐”라며 “장기적인 안목을 가진 신규사업은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는 추세”라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지경부·행안부 등이 시간에 쫓겨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만들지 못하고, IT산업의 미래가치를 예산 편성 당국에 충분히 설명하지 못해 화를 좌초했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IT강국 옛말 되나=IT분야 투자 위축은 미래 산업 경쟁력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이 점에서 외국과 사뭇 비교된다. 일본이 조만간 발표하기로 한 ‘IT 신전략 3개년 긴급플랜’에는 △의료정보화 △IT인재 양성 △전자행정 추진 △환경 대응형 신산업 창출 등 그동안 국내 전문가들이 ‘디지털 뉴딜’ 아이디어로 제시했던 내용이 거의 담겼다. 그것도 한국보다 90배나 많은 예산을 투입한다.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MB정부 들어 정보화 예산이 줄면서 이 같은 조짐은 이미 가시화했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2008년 IT산업 경쟁력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2007년보다 5계단이나 하락한 8위를 기록했다. 건설사 사장 출신이 대통령이 되다 보니 아예 첨단 분야가 홀대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자조섞인 지적이 그래서 나왔다.

 미국·일본 등 선진국뿐만 아니라 중국·인도 등 개발도상국도 앞다퉈 ‘디지털 뉴딜’을 추진 중이다. 위기감은 더하다. 중국은 지난달 3년간 약 6000억위안(138조원)을 투입하는 ‘전자통신산업진흥안’을 마련, 3G 이동통신 사업과 디지털TV 사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기로 했다.

 김성조 중앙대 교수는 “한국은 IT제조업 분야에서 강국이지만, IT서비스나 SW산업은 오히려 인도보다 못한 상황”이라며 “앞으로 경쟁국의 수십배나 뒤지는 투자로 IT강국의 위상을 지킨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최정훈·장지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