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징 이슈] 사용자 발전(UCP)](https://img.etnews.com/photonews/0903/090304045009_2071020713_b.jpg)
친환경 에너지를 반드시 태양, 풍력, 바이오매스에 의존할 필요가 있을까. 건강한 신체만 있으면 웬만한 가전기기는 자기 힘으로 충전해서 돌리는 사용자 발전(UCP:User Created Power)시대가 온다. 에너지는 항상 외부에서 얻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보자. 현대인은 가장 가깝고 깨끗하며 고갈될 일이 없는 풍요로운 에너지원의 존재를 잊고 살았다. 미래에는 바로 당신이 지구를 구하는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이 될 수도 있다.
미국 조지아 공대의 왕종린 교수팀은 최근 햄스터의 움직임을 전류로 바꾸는 나노발전기를 공개해 세계적 화제를 모았다. 그는 햄스터에게 나노 와이어로 만든 발전기 네 개를 붙이고 발전량을 측정했다. 햄스터가 쳇바퀴를 돌리거나 먹이를 먹을 때마다 0.1∼0.15V의 전기가 흘렀다. 발전량이 워낙 적어서 햄스터 1000마리를 모아야 휴대폰 충전이 가능한 수준이다. 하지만 과학계는 이번 실험에 크게 주목했다. 불규칙한 생체운동을 전기 에너지로 바꾼 세계 최초의 사례였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모든 생물의 근육수축과 이완은 기계적 에너지로 전환시켜 전기를 만들 수 있지만 불규칙한 운동특성 때문에 실용화에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왕교수팀은 비규칙적이고 아주 미세한 동물이나 인간의 근육힘을 전기로 바꿀 수 있음을 입증했다.
왕 교수팀은 지난 2005년부터 압전효과를 이용한 나노발전기 연구를 시작했다. 압전효과란 크리스털, 세라믹 같은 압전체에 물리적 힘을 가하면 전기 에너지로 변환하는 효과를 말한다. 가스레인지의 손잡이를 돌리면 압전체가 전기불꽃을 만들어 가스불을 붙이는 원리를 생각하면 된다. 이 방식을 이용하면 근육이 움직일 때 발생하는 불규칙한 움직임을 전기 에너지로 만들 수 있다.
나노 발전기는 얇고 잘 휘어지는 폴리머 기판에 산화아연 소재의 나노 와이어를 붙인 구조다. 햄스터가 움직일 때마다 와이어가 이리저리 구부러지면서 전류가 흐르는 것이다. 이 방식을 이용하면 근육이 움직일 때 발생하는 불규칙한 움직임을 발전으로 쓸 수 있다. 연구팀은 지난해 나노와이어(발전섬유)로 옷감을 만들어서 전기를 생성하는 실험까지 성공한 바가 있다. 나노구조의 발전기술은 향후 실용적인 입는 컴퓨터에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발전 섬유로 옷을 만들어 입으면 그저 걷거나 숨쉬고, 심지어 심장의 박동으로 전기를 생성할 수 있다. 연구팀은 더욱 많은 발전섬유를 겹쳐서 발전량을 늘린 발전장치를 개발하고 있다. 왕 교수는 “햄스터가 아니라 더 큰 동물이나 사람이 나노발전기를 움직이면 휴대폰 충전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한다. 앞으로 5∼10년이 지나면 나노발전기가 빽빽한 옷감으로 만든 자켓만 입으면 의복형 컴퓨터뿐 아니라 대부분의 휴대형 전자기기를 충전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국방분야에서는 군화 밑창에 나노발전기를 넣어서 걸을 때마다 무전기를 충전하는 시나리오도 예상하고 있다. 현 단계의 나노발전기는 워낙 발전량이 적어서 휴대폰 충전은 무리다. 그러나 몸 속에 들어가서 활동하는 초소형 디바이스에는 대단히 유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과학자들은 그동안 신체 안을 떠돌면서 병원균, 암세포를 감지하고 약물을 전달하는 생체이식용 나노센서를 개발했지만 전원문제 때문에 실용화를 못하고 있다. 나노센서는 미세한 전원만 공급하면 우리 몸 속에서 다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나노발전기가 신체 근육이나 장기 안에서 일정하게 전류를 생성할 경우 수많은 나노센서로서는 무한 발전소가 생긴 것이나 다름없다. 왕 교수는 조만간 신체에 무해한 폴리머 수지로 나노발전기를 포장해서 근육 속에 이식하는 실험을 할 예정이다. 만약 성공한다면 새벽에 조깅을 하면서 몸에서 나온 생체전류로 MP3 플레이어를 켜고 음악을 즐길 수도 있다. 텍사스 A&M대학의 연구진은 통화 목소리의 떨림으로 전기를 만드는 초고효율의 압전소자를 개발하기도 했다. 방전된 휴대폰을 들고 노래를 부르면 전화 한 통화는 가능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걷거나 말하고 허리를 펴거나 팔 돌리기, 심지어 심장 박동으로 최소한의 전기를 언제 어디서나 얻는 사용자발전(UCP)이 일상화다면 어떤 세상이 열릴까. 인류가 맨몸으로 전기를 만드는 능력을 갖는 순간 신체는 놀라운 확장을 경험하고 우리 인생은 한층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사용자발전은 현재진행형.
사용자발전(UCP)의 확산에 반드시 첨단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흔히 사용하는 발전기술을 이용해도 우리의 삶을 얼마든지 개선할 수 있다.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MIT 교수가 주창해서 세계의 개도국 어린이들에게 저가형 노트북을 공급하는 OLPC(One Laptop Per Child) 프로젝트의 가장 큰 걸림돌은 전원문제다. 아직도 전기 없이 살아가는 저개발국 인구가 전 세계에 16억명이나 된다. 아이들에게 노트북PC를 공짜로 보급한다 해도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오지마을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사용자 발전은 네그로폰테 교수의 고민을 간단히 해결했다. MIT 졸업생들이 개발한 자가발전형 ‘요요 발전기’는 줄만 당기면 내장된 발전기가 돌면서 전력이 나온다. 조그만 자가발전형 충전장치를 휴대하면 언제 어디서나 노트북PC, 휴대폰, 라디오 등 가전기기에 필요한 전기를 공급할 수 있다. 이는 15∼20W의 전력을 생산한다. 1분만 줄을 당기면 2분간 노트북PC, 30분간 휴대폰 통화와 LED 전등, 45분간 닌텐도 게임, 6시간 동안 MP3P를 켤 수 있다.
고정식 요요 발전기도 있는데 당기는 줄이 두 개다. 벽에 걸어놓고 헬스클럽의 운동기구처럼 양손으로 줄을 당겨서 전기를 만든다. OLPC는 요요 발전기와 노트북PC를 어린이들에게 세트로 전달할 예정이다. 컴컴한 오지의 어린이들이 열심히 요요 줄을 당기면서 컴퓨터로 숙제를 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사용자발전은 전기가 없어서 자동차 납배터리로 TV와 전등을 켜는 전 세계 16억 인구에 희망의 빛이 되고 있다. 요요발전기는 올해 상반기에 시장에 나올 예정이다. 회사 측은 선진국에서도 야외캠핑이나 정전이 된 비상 시에 요요 발전기가 매우 유용하게 쓰일 것이라고 전망한다. 일부에선 아이폰을 즉석에서 충전시키는 요요 발전기의 출시를 제안하고 있다. 살 빼는 셈치고 집에서 휴대폰 충전할 때 요요발전기의 줄을 당기는 UCP 운동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헬스클럽은 살을 빼기 위해 신체 에너지를 소진하는 장소지만 발상을 전환하면 에너지 발전소가 되기도 한다. 헬스기구에 발전기를 연결해서 열심히 운동을 하면 전력이 나오는 사용자발전의 개념을 이용하는 것이다. 간단한 아이디어지만 왜 그동안 널리 실용화가 안 됐는지 이유를 묻는다면 에너지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무관심을 탓할 수밖에 없다. 태하메카트로닉스는 최근 살을 빼는 운동으로 발전기를 돌리는 자가발전형 헬스 바이크를 출시했다. 사용자가 바이크 페달을 힘껏 밟으면 발전기를 통해 20인치 TV를 켜는 데 충분한 100∼200W의 전력이 나온다. 힘들다고 잠시 운동속도를 늦추면 곧바로 경고등이 켜진다. 30초 뒤에 TV화면은 꺼져 버린다. 인기가 높은 TV프로그램을 시청하려면 최소 30분에서 한 시간은 쉬지 않고 페달을 돌려야 한다. 전기에너지를 절약할 뿐만 아니라 TV를 보기 위해 계속 움직이는 운동효과도 만점이다. 요즘 피트니스 센터를 가보면 모터로 돌아가는 첨단 헬스장비로 인해 전력수요가 급격히 늘고 있다. 회사 측은 육체운동을 전기로 바꾸는 친환경 헬스기구에 시장반응이 좋으면 여타 헬스기구에도 적용하겠다는 방침이다. 미래의 헬스장은 회원들의 운동량을 이용해서 자체 전력수요를 상당부분 절감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사용자발전은 전혀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전기 에너지가 지금처럼 풍족하지 않던 시절에는 사람들이 직접 전력을 만드는 사용자 발전 행위에 익숙했다. 구형 전화기는 자석식 핸들을 몇 차례 돌려서 전화연결을 했다. 자전거 전등은 타이어에 소형 발전기를 붙여서 전력을 얻었다. 뭐든지 수동식보다는 자동화해야 첨단기술이고 진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우리는 윗세대보다 열 배는 많은 에너지를 펑펑 쓰면서도 에너지 위기를 논하는 처지가 됐다. 이러한 악순환을 끊으려면 에너지란 반드시 전기 콘센트나 배터리에서 나온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용자발전은 훌륭한 대체 에너지원이자 현대인이 편리한 삶 속에서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노동의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 전력회사는 스스로 필요한 전력을 만들어서 자급자족하는 사용자 발전(UCP)의 확산추세가 우려되겠지만 인류문명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유지하려면 이 분야에 더욱 많은 관심과 투자가 필요하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