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만드는 사람들] SF와 미래 예측의 21세기식 접근

[미래를 만드는 사람들] SF와 미래 예측의 21세기식 접근

 1990년대 초, 시청 쪽 덕수궁 돌담길에 중국에서 온 교포들이 길게 늘어 앉아 좌판에서 각종 약제들을 팔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세상이 변했다’는 것이 그처럼 실감나게 다가왔던 때가 없었다. ‘중국’이라면 대만을 말하는 것이고 지금의 중국은 ‘중공’이라고 배워 왔던 나에게는 무척이나 낯선 풍경이었다.

 그와 비슷한 느낌을 최근에 또 받았다. 버락 후세인 오바마 2세. 불과 2∼3년 전만 해도 ‘후세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흑인이 미국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오로지 ‘와스프(WASP)’, 즉 백인(White) 앵글로색슨(Anglo-Saxon)계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기독교 신교)교도만이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있다던 분석이 무색한 시대다.

 미래를 전망하는 소설들은 이런 변화를 예측했을까. 100년도 더 전에 쥘 베른과 H G 웰스가 발표했던 소설들은 원자력잠수함이나 우주여행 등을 예언해 지금까지도 감탄을 받는다. 그러나 이제는 SF에 등장하는 이러저러한 미래 과학기술의 개별적 예측보다도 사회와 시대의 흐름이 어떻게 달라질지 내다보는 거시적인 전망에 주목해야 할 때다.

 이를테면 1981년에 발표된 미국 영화 ‘롤오버(Rollover)’는 지금 세계가 겪고 있는 경제 위기를 상당히 정확하게 예측한 작품이다. 오일달러 영향으로 미국 달러가치가 폭락하고 그 결과 전 세계가 공황 상태에 휩싸인다는 일종의 재난 영화인데, 극 중에서 그 실태를 보도하는 국제 뉴스에 맨 먼저 등장하는 곳은 섬뜩하게도 서울이다.

 우리가 이런 전망에서 취해야 할 것은 개별 과학기술의 결과론적 예측이 아니다.

 그 이면에 담긴 시대 변화의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 그 의미란 물론 낡은 이념적 사고방식의 폐기도 포함되지만, 더 중요하게는 과학기술의 발달 그 자체가 시대 흐름의 방향을 좌지우지할 것이라는 점이다.

 첨단 기술 발전은 에너지를 더 적게 쓰고, 내구성이 더 강하고, 기능은 훨씬 더 진보된 문명의 이기를 속속 내놓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오히려 ‘친환경’이라는 코드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문명을 이끌어가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인간 자체가 지금과는 다른 이질적인 존재가 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미국의 사회학자 도나 해러웨이는 1985년에 내놓은 ‘사이보그 선언’에서 인간과 기계가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문명이 출현할 가능성을 말했다. 단순히 컴퓨터와 연결된 인간이라는 개별 개체 차원이 아니라 인간 문명의 총체적인 질적 변환을 의미하는 것이다.

 SF에서는 예전부터 과학기술이 가져올 여러 가지 긍정적, 또는 부정적 파급효과를 전망해왔다. 그렇게 펼쳐진 미래 시나리오들의 스펙트럼에서 나무를 봄과 동시에 시대의 흐름이라는 숲의 모양도 읽어내는 것, 이것이 21세기식 SF 독법일 것이다.

 박상준 오멜라스 대표(cosmo@chol.com)

  이수운기자 per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