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훈의 시네마 읽기] 실종

[한정훈의 시네마 읽기] 실종

 얼마 전 한국은 강호순이라는 연쇄 살인범으로 인해 한동안 공포에 떨었다. 멀쩡하게 생긴 인간이 희대의 살인마였다니….

 이 때문에 사이코패스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진실에 먹고사는 영화계가 이를 놓칠 이유가 없다. 이달 말 개봉을 앞둔 영화 ‘실종(김성홍 감독, 추자현 주연)’은 극중 설정과 캐릭터, 사건의 전개 방식이 실제 강호순 사건과 유사한 점이 많아 화제가 되고 있는 작품이다. 영상을 먼저 봤던 많은 영화계 사람이 현실과 비슷한 설정에 소름끼쳐 했다.

 이 영화가 화성 연쇄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살인의 추억’, 이형호군 유괴사건을 다룬 ‘그놈 목소리’, 유영철 연쇄 살인사건을 연상케 하는 ‘추격자’ 등과 다른 점은 단 하나다. 이전 영화들이 사건이 일어난 다음,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다면 이 작품은 순전히 감독의 상상 속에서 탄생했다.

 ‘실종’을 연출한 김성홍 감독은 지금과 같은 주목이 오히려 더 부담스럽다고 털어놨다. 김 감독은 “영화에서 그리고 싶었던 주제가 현대사회의 범죄 핵심을 관통했을 뿐”이라며 “세상이 외면할 수밖에 없던, 죽음보다 더 참혹하고 무서운 게 실종이라는 판단에 따라 관련 영화를 찍게 됐다”고 연출의 변을 밝혔다.

 현실에 앞서 만들어졌지만 영화 실종은 철저히 지금의 사건을 답습한다. 실종은 인간의 잔혹성이 어디까지인지를 그려보는 데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영화는 겉으로는 순박해 보이는 인물이지만, 내면은 이유 없이 잔혹한 살인 본능과 그런 사이코패스에게 유린당한 피해자와 유가족이 겪는 공포와 분노를 스크린에 고스란히 담았다.

 며칠째 소식이 없는 동생의 연락을 기다리던 언니 현정(추자현)은 동생의 휴대폰을 위치 추적한 후, 어느 시골 마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현정은 인근 파출소에 동생의 실종 사실을 알리고 수사를 의뢰하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거부당한다. 이에 홀로 마을 곳곳을 다니며 사라진 동생의 행적을 찾기 시작한다. 한 목격자에게서 마을에서 노모를 모시고 사는 판곤(문성근 분)의 집 근처에서 동생을 봤다는 말을 듣게 된 현정은 판곤의 집을 찾는다. 어딘지 모를 수상함에 경찰과 동행하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평소 판곤은 그럴 사람이 아니라며 두둔하고, 현정 역시 마음을 돌린다. 떠나려는 현정 앞에 나타난 판곤은 현정이 보여준 사진 속 동생의 목걸이를 주웠다는 말에 또 한 번 판곤의 집을 따라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동생의 사건을 듣게 되고 그녀 역시 끔찍한 현장과 마주치게 된다.

 소름끼치는 주제와 함께 실종이 주목받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올드보이의 귀환이다. ‘투캅스’ 시리즈의 시나리오 작가 출신으로, ‘손톱’ ‘올가미’ 등 한국영화계에서 공포 스릴러 장르를 개척해온 김성홍 감독은 오랜 공백 기간에도 녹록지 않은 연출 솜씨를 보여준다. 또 도시적인 캐릭터의 대명사였던 배우 문성근의 변신도 눈에 띈다. 허름하고 평범한 촌부 판곤 역으로 출연한 그는 아내가 실종된 뒤, 홀로 노모를 극진히 모시는 효자 촌부의 모습을 능청스럽게 그려낸다. 특히, 순간 내비치는 광기와 차가움을 동시에 담은 그의 눈빛은 절대악의 진수를 보여준다는 평이다.

 이 밖에 추자현의 안정적 연기도 놀랍다. 목숨을 걸고 위험한 추적에 나선 언니 현정역을 맡은 그녀는 영화에서 온몸을 던지는 열연을 선보인다. 마약 중독자로 분했던 ‘사생결단’에서의 추자현의 연기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한정훈기자 existen@etnews.co.kr